공지영을 만나다 - '즐거운 나의 집'

- 공지영을 만나다.
공지영의 책을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름 많은 책을 썼고, 유명하기도 한 작가이지만 좀처럼 접할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첫만남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자서전적 소설인 '즐거운 나의 집'이었다.
2000년이 넘어서면서 한국사회는 영화부터 시작하여, 소설까지 여러 방법으로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만큼 기존의 가족이라는 담론이 가지고 있던 영역이 작기도 하였고, 그만큼 우리에게 소중한 공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가족을 이제 공지영이 다시금 우리에게 묻는다.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탕으로 하여 담담하게 말이다.
처음 만난 그녀의 소설은 마치 물 흐르듯이, 즐겁게 읽혔다. 소설 속 인물의 감정이 변화하는 순간, 내 감정도 변화됐다. 그렇게 친근하게, 그러나 결코 쉽게 쓰여지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지는 그녀의 소설. 첫 만남은 의외로 너무나 괜찮았다.
- 문제는 우리 집이 아니라 나의 집이라는 것이다.
한국 사회만큼 집단의 의미를 크게 부여하는 곳이 있을까. 유럽이나 서구세계 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걸쳐서 수많은 나라들이 있지만, 내 생각에는 한국 사회는 그 안에서 조직을 강조하는데 있어 톱클래스에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에 대한 원인으로는 군대문화, 삐뚤어진 공동체 문화들이 있겠지만 암튼 결과적으로는 집단의 의미를 크게 부여하는 나라인 듯 하다.
많은 시선들이 집단을 주목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개인이다. 그러기에 문제는 가족이 아니라 가족의 구성원이다. 우리 집이 아니라 나의 집이다. 여러 명의 나의 집이 비로소 가족을 이루는 것이다. 소설은 바로 그 점을 되풀이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가족의 구성원이기 이전에 나 자신이다' 소설은 그 점을 너무나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러기에 개인으로 자립하기 위한 모든 책임과 자유, 역시 가족에게서 개인으로 되돌아 온다.
- 질서와 변화
소설은 두 명의 상징적인 인물을 내세운다. 한 명은 질서를, 또 다른 한 명은 변화를 지향한다. 작가는 물론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소설을 써내려간다. 약간의 편애는 있지만 그래도 소설은 일상을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지나치게 미화하지도 않으며,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질서는 기존의 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책임감 있는 가장, 절도 있는 행동들, 미래가 예상되는 행동들. 반대로 변화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그러기에 소설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오늘이 행복하지 않으면, 미래 역시 행복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를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하며, 알수없는 미래에 한발짝, 한발짝 다가가는 것이다.
- 궁극적인 물음보다는 상황에 맞는 선택
결국 문제는 개인이냐 집단이냐, 질서냐 변화냐가 아니라, 그러한 대립구도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무엇을 가치있게 여길 것인가 이다. 마치 개인에게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면 집단을 배제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개인을 중시할 수도, 집단을 중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오랫동안 한가지의 가치만을 강요했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선택을 박탈해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어느 한 쪽만을 편애하면서 글을 쓰지 않았다. 그것은 같이 살아가는 법, 개인으로서 자립하는 법을 대립의 관점에서만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대립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의 영역이다. 아니 그보다 근본적으로 개인의 행복에 대한 문제이다. 질서를 중시함으로서 행복해질 수 있다면 질서를 몸에 배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행복에 대한 많은 물음들에 대해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자신의 삶을 받아들일 수 있냐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타인의 삶 역시 사랑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러기에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을 먼저 이해하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행복은 바로 그 곳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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