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점에 대한 철학적 고찰

이번에 한 과목의 조교를 맡으면서 중간고사 시험에 대한 채점을 하게 되었습니다.
채점을 하면서 채점 자체가 보통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점수부여방식에서부터 그 기준까지 결정해야 되는 생각들이 참으로 많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채점에 대한 철학적인 이야기를 나누어볼까 합니다.
<채점의 주관성>
채점은 가치판단으로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해서 채점은 다 똑같은 채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분들은 정답이 맞고 틀리고에 큰 비중을 두시는 분들도 계시고,
어떤 분들은 정답으로 가는 과정에 더 중점을 둘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답의 기발함에 대해서 중점을 둘 수도 있는 것이고,
어떤 분들은 답을 어떻게 꾸미느냐에 대해서 더 중점을 둘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무언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개개인의 가치판단을 필요로 합니다.
그 가치판단은 개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채점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일부의 채점자들은 마치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는 양
그 문제를 은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이 정한 기준이 절대적이라는 전제하에 나온 것으로서
개인의 생각을 절대적 진리화함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가치판단'이라는 채점에서 중요한 사항을 잊어버렸을 때 발생하는 것입니다.
<진리에 대해서>
그렇다면 요지는 어떻게 주관적인 것들을 나열할 수 있느냐입니다.
무엇이 무엇보다 높고, 낮음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이에 전제되어야 할 것은 두가지입니다.
바로 답이라는 '진리'의 존재와 '상상력'입니다.
먼저 '진리'의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채점에서 답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 채점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채점이 없는 시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험은 각자의 답안에 대한 주관성을 모두 인정해 주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기에
도달해야될 목표 역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채점을 통하여 어떠한 목표 - 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답이라는 '진리'가 필요하게 됩니다.
이 '진리'는 절대적 진리이든, 상대적 진리이든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닌 듯 싶습니다.
(Popper는 과학적 방법론에 있어서 객관적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었었습니다. 그는 절대적 진리는 진리가 아닌 것들을 계속해서 발견해 냄으로서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Popper에게 진리란 인간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밖에서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Kuhn은 진리라는 것은 인간사회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것이고 - 예를 들어서 A라는 이론과 B라는 이론 중 선택을 하는 것은 과학사회라고 보았지요. - 진리는 인간에게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Kuhn의 경우에는 진리에 대해서 Popper와 다르게 상대주의적 관점을 취하는 것 같지만 Kuhn은 자신이 상대주의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는 진리에 대한 비가역을 주장했습니다.)
상대적이든 절대적이든 진리라는 것이 존재함으로서 비로소 도달해야 될 목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로소 두번째 전제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바로 '상상력'입니다.
'상상력'이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상상력과는 조금 구별을 해야될 듯 싶습니다.
이것은 계통학과 연관된 것으로
생물간의 계통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계통학에서 생물을 계통별로 나누기 위해서는 일정한 상상력이 요구됩니다.
어떤 상상력이냐고 하면
예를 들어서 팬더를 곰과에 넣어야 할지 너구리과에 넣어야 할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계통학이라는 것은 동물들이 계통에 대한 지도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호랑이와 같은 생물이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정하는 것입니다.
고양이와의 유사성을 들어서 호랑이를 고양이에 집어 넣는 것에는
일정한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계통에서 벗어난 동물들을 계통구조 안으로 집어넣기 위해서 들이는 요구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팬더의 경우에는 그 상상력이 엇갈린 것이겠지요.
어떤 이들은 곰과에 넣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너구리과에 넣기도 하기에 말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물질들 - 그것이 계통학에서의 동물들이든 시험에서의 개개인의 답안이든 - 이
계통학이나 채점에서의 점수나열처럼 줄세워지기 위해서는
줄을 정하고 줄에 어긋난 것을 줄 안으로 집어넣는 상상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관적인 것을 일반성으로>
그렇다면 이제 채점에 대한 물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면
어떻게 하면 개개인의 다양한 답안들 - 주관성 - 을 답 - 진리 - 에 다가설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할 것인가를 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어떻게 하면 다양한 답안들을 줄세우고
줄세운 것들에 대해서 일반성을 획득할 것인가입니다.
더 쉽게 이야기해서는 개개인이 답에 도달한 정도 - 점수 - 를
모두에게 이해시킬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답안이 도출되었는데도 그것이 개개인들에게 일반성을 획득하지 못했다면
그 답안은 완전히 무효가 되어버리겠지요.
예를 들어서 답이 맞으면 무조건 100점, 틀리면 무조건 0점이라는 기준이 있을 때
이 기준은 때에 따라서는 모두에게 인정을 받을 수도 있고 (많은 객관식의 경우)
때에 따라서는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주관식의 경우)
이것은 채점에 있어서는 채점기준으로 정해질 것입니다.
채점을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동의한다는 것은 어느정도 일반성을 획득하였다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일반성을 획득하는데 실패하였다는 것입니다.
<일반성 - 벡터>
그렇다면 채점에 대해서 일반성이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채점에서의 일반성이란 하나의 벡터로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벡터라는 것은 힘과 방향을 갖는 성분을 이야기합니다.
채점이라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답이라는 진리에 다가가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진리로 가는 방향과 진리까지 얼마만큼 갔는지에 대한 힘이 존재할 것입니다.
이 두가지를 고려하여 채점은 진행됩니다.
진리까지 가는 방향을 설정하고 진리까지 잘 도착했다면 완벽한 점수를 부여하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방향과 힘에 따라서 위에서 이야기했던 '상상력'을 발휘하여
점수를 부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목에 따라서 방향과 힘 중에 어떠한 것에 비중을 둘 것인가는 매우 달라질 것입니다.
어떤 과목은 방향이 절대적으로 중요할 수 있고
어떤 방향은 힘이 절대적으로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맞춰서 채점은 진행됩니다.
채점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가치와 나의 가치가 부딪치는 순간이며
상대방의 답안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살면서 얼마만큼이나 채점을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채점,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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