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신입생
저는 새내기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새내기라는 말 자체를 싫어한다기 보다는,
사실 대학 신입생들에게
새로움이라는 것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에 의문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대학 신입생들을 새내기라고 부르지만,
그렇게 부르는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자신의 새로움을 드러낼 기회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나 새로배움터의 공간은 개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자리라기 보다는
반이라는 조직의 통합을 위주로 진행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신입생들의 이야기는 별로 들을 수 없고
- 환경이 말하기 힘들게 할수도, 개인이 그럴수도 있지만 -
많은 모임들이 집단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그 안에서 개인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전 더이상 신입생들에게서 새로움을 '발견'해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새로움을 지녔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새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는지 먼저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들이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 그때 비로소 새내기라고 부를 수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동시에
굳이 대학 초년생 만을 새내기로 부를 필요도 없겠지요.
새로움을 추구해야 되는 것은 나이가 많고 적음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대학 신입생들과 대화를 하는 자리에 참석하였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는 '친구'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습니다.
어떠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기에
개개인의 생각을 읽어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였습니다.
첨으로 느꼈던 것은
그 자리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보다 자신의 생각이나 주관을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신입생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나 새로배움터를 거치고 나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나 새로배움터는 집단적 사고를 강조하는 곳이기에)
극소수의 신입생을 제외하고는 보통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신입생들이 별로 없기 마련인데,
흥미롭게도 많은 수의 신입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였었습니다.
예전에 바라보지 못했던 모습으로 흥미롭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에 비해
신입생들 중 몇몇의 생각은 신선하기 보다는 오히려
'신입생이 저런 생각도 할 수 있나'라고 생각할 정도의 이야기들도 좀 있었습니다.
그들은 현재의, 기존의 사회관계 안에서의
인간관계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거침없이 이야기했던 반면에
그 안에서의 새로움을 찾기란 힘들어 보였습니다.
기존의 사회를 파악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인간관계는 사회 안에서 이야기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간관계는 결코 사회에서 벗어나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사회의 인간관계는 곧 그 사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현재 어떻게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있으며, 어떻게 구성되어지는지를 알려면
사회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을 아는 것이 '무엇'을 위해 필요한지를 아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관계를 파악하는 이유로서,
그 관계에 좀 더 쉽게 적응하거나 그 관계에서 잘 살아남기 위해서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직장에서의 관계가 이해타산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며,
사람사이의 관계가 이익을 바탕으로 진행되기도 합니다.
(이익이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인간관계가 그렇다면,
그것을 잘 알아서 그 안에서 잘 사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가 목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알아두면 잘 적응할 수 있고 적당한 거리를 둘 수도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서로의 이익에 따라서 진행되기에
그것이 무슨 이익이든지 그것을 잘 파악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기존의 사회적 제도, 인간관계를 파악한다는 것은 동시에
누구보다 그 관계를 잘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이 절대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기존의 관계를 잘 파악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내는 과정입니다.
사회가 이러이러한 관계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사회의 이러이러한 관계 밖에 존재하지 않겠지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직장에서의 관계가 현재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이루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전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기존의 관계에 대해, 기존의 사회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
그 안에서의 관계가 자신의 관계의 전부라면,
더 이상의 새로운 관계는 존재하지도 생각할 수도 없게 됩니다.
설사 기존의 관계를 받아들인다고 할지라도
그 관계는 지금의 사회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남성중심적이고, 이성애적이며, 비장애인 중심적일 것이며, 민족중심적일 것이며,
권위적일 것이며, 집단적일 것이며, 학번중심적일 것이며, 나이 중심적일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대화를 할 때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학번을 드러냅니다.)
그 관계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 활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사회의 불합리성을 깨는 방향으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게 어떨까요?
이것은 여전히 우리사회내에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해서 지향하고 만들어 가야될 관계들이 아닐까요?
어제의 신입생과의 자리에서 미쳐하지 못했던 말이었습니다.
많은 말들이 오고 갔지만,
그리고 자신의 인간관계에 대해서 많이 드러냈지만,
중요한 것은 '새로움'입니다.
'대학,사회에서의 관계는 이래'라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사회에서의 관계는 어때야 할까'라고 이야기하여야 합니다.
'자신의 인간관계는 어떠한 가치를 중요하게 놓고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 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부딪치며 만들어 가야 할 관계들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관계를 가지고 생활을 한다면 세상이 재미없지 않을까요?
우리의 기존 관계 안에서도 바꾸어야 될 것들이 많지 않을까요?
그 과정에 서있기를 희망합니다.
새내기라는 말 자체를 싫어한다기 보다는,
사실 대학 신입생들에게
새로움이라는 것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에 의문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대학 신입생들을 새내기라고 부르지만,
그렇게 부르는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자신의 새로움을 드러낼 기회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나 새로배움터의 공간은 개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자리라기 보다는
반이라는 조직의 통합을 위주로 진행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신입생들의 이야기는 별로 들을 수 없고
- 환경이 말하기 힘들게 할수도, 개인이 그럴수도 있지만 -
많은 모임들이 집단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그 안에서 개인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전 더이상 신입생들에게서 새로움을 '발견'해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새로움을 지녔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새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는지 먼저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들이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 그때 비로소 새내기라고 부를 수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동시에
굳이 대학 초년생 만을 새내기로 부를 필요도 없겠지요.
새로움을 추구해야 되는 것은 나이가 많고 적음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대학 신입생들과 대화를 하는 자리에 참석하였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는 '친구'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습니다.
어떠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기에
개개인의 생각을 읽어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였습니다.
첨으로 느꼈던 것은
그 자리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보다 자신의 생각이나 주관을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신입생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나 새로배움터를 거치고 나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나 새로배움터는 집단적 사고를 강조하는 곳이기에)
극소수의 신입생을 제외하고는 보통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신입생들이 별로 없기 마련인데,
흥미롭게도 많은 수의 신입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였었습니다.
예전에 바라보지 못했던 모습으로 흥미롭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에 비해
신입생들 중 몇몇의 생각은 신선하기 보다는 오히려
'신입생이 저런 생각도 할 수 있나'라고 생각할 정도의 이야기들도 좀 있었습니다.
그들은 현재의, 기존의 사회관계 안에서의
인간관계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거침없이 이야기했던 반면에
그 안에서의 새로움을 찾기란 힘들어 보였습니다.
기존의 사회를 파악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인간관계는 사회 안에서 이야기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간관계는 결코 사회에서 벗어나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사회의 인간관계는 곧 그 사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현재 어떻게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있으며, 어떻게 구성되어지는지를 알려면
사회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을 아는 것이 '무엇'을 위해 필요한지를 아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관계를 파악하는 이유로서,
그 관계에 좀 더 쉽게 적응하거나 그 관계에서 잘 살아남기 위해서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직장에서의 관계가 이해타산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며,
사람사이의 관계가 이익을 바탕으로 진행되기도 합니다.
(이익이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인간관계가 그렇다면,
그것을 잘 알아서 그 안에서 잘 사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가 목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알아두면 잘 적응할 수 있고 적당한 거리를 둘 수도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서로의 이익에 따라서 진행되기에
그것이 무슨 이익이든지 그것을 잘 파악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기존의 사회적 제도, 인간관계를 파악한다는 것은 동시에
누구보다 그 관계를 잘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이 절대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기존의 관계를 잘 파악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내는 과정입니다.
사회가 이러이러한 관계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사회의 이러이러한 관계 밖에 존재하지 않겠지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직장에서의 관계가 현재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이루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전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기존의 관계에 대해, 기존의 사회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
그 안에서의 관계가 자신의 관계의 전부라면,
더 이상의 새로운 관계는 존재하지도 생각할 수도 없게 됩니다.
설사 기존의 관계를 받아들인다고 할지라도
그 관계는 지금의 사회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남성중심적이고, 이성애적이며, 비장애인 중심적일 것이며, 민족중심적일 것이며,
권위적일 것이며, 집단적일 것이며, 학번중심적일 것이며, 나이 중심적일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대화를 할 때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학번을 드러냅니다.)
그 관계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 활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사회의 불합리성을 깨는 방향으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게 어떨까요?
이것은 여전히 우리사회내에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해서 지향하고 만들어 가야될 관계들이 아닐까요?
어제의 신입생과의 자리에서 미쳐하지 못했던 말이었습니다.
많은 말들이 오고 갔지만,
그리고 자신의 인간관계에 대해서 많이 드러냈지만,
중요한 것은 '새로움'입니다.
'대학,사회에서의 관계는 이래'라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사회에서의 관계는 어때야 할까'라고 이야기하여야 합니다.
'자신의 인간관계는 어떠한 가치를 중요하게 놓고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 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부딪치며 만들어 가야 할 관계들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관계를 가지고 생활을 한다면 세상이 재미없지 않을까요?
우리의 기존 관계 안에서도 바꾸어야 될 것들이 많지 않을까요?
그 과정에 서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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