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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역할을 묻다 - 촛불 시위를 바라보면서

- 역사적인 사건

너무도 역사적인 순간이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이러한 모습을 본 적도 없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풍경, 상황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오만함의 극치이며,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여전히 이야기할 것들이 많다.
많은 미디어에서는 다양한 방향에서 이번 촛불 시위를 보도하였다. 특히 모든 미디어를 바탕으로 하는 다발적인 소통이 시위를 이끌었다는 것은, 한국 뿐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도 큰 영감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였는가. 컴퓨터를 가지고 나와 생생히 중계하며, 다시 그러한 중계는 다양한 토론과 의견들을 창출해 낸다. 그러한 의견과 토론을 바탕으로 다시 사람들은 정보를 얻고, 거리로 나선다. 그렇게, 그렇게 수십만의 사람들이 광장에 섰으며, 그 안에는 안타깝지만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나는 비겁했으며, 여전히 두려워 하고 있다.


- 태극기를 보다.

사실 이번 시위가 미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혹은 대학생이 아닌 촉발점은 중고등학생들이었다는 사실들은 너무나 많이 이야기되었기에 다시 거론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다만 나이가 든 사람들이 걱정하는, 혹은 아직도 그들을 바보 취급하는 모습들은 여전히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고 있지 못한 듯 싶다. 80년대의 대학생들 역시 대학에 갓 입학하여 세뇌받은 학생들이라는 소리를 들었듯, 언제나 나이권력은 세월을 지나 존재하는 듯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우연히 시위 현장을 보게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그 시위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언제나 비겁한 변명인 듯 이야기하는 것은 직장인으로서의 피로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예전에 비판했듯, 비겁한 변명이자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촛불시위를 보았지만 그 시위대 앞의 태극기를 보고 있자니 마음 한켠이 무거워졌다. 역사적으로도 커다란 시위는 항상 애국과 함께 증폭된다. 21세기로 들어왔지만, 사람들이 일상에서 국가에 대한 관심을 잊은 듯 보였지만, 국가는 여전히 나에게 커다란,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드는 대상이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이 촛불 시위를 지지해야 된다는 것이다. 애국이라는 코드가 싫다고 할 지라도 애국을 버리고 시위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오히려 찬물을 끼얻는 식이 된다. 오히려 애국이라는 코드를 어떻게 변용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생산적인 운동이며, 그렇게 해야 한다. 국가 폭력을 줄이는 방향이 애국이라고 불린다면, 그것이 아직은 애국의 이름으로 불린다고 할 지라도 다음 운동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는다. 소비적인 분열이 아닌, 생산적인 분열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 현실에서 도망가다.

진중권을 보았다. 대학교 초년생때 그렇게 싫어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나에게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여전히 좋아지진 않지만, 그는 결코 만만히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단순했다. 그는 시위의 최전선에 있었으며, 그가 이야기한 것을 실행하였다. 많은 먹물들이 여전히 마치 시위는 자신의 영역이 아닌 양 물러나 있을 때, 그는 당당히 그 자리에 서 있었으며 누구보다 더 열심히 자신의 이야기를 외쳤다. 그러기에 그의 목소리는 예전과는 다른 힘이 느껴졌다.
여러가지 이유로 현실의 이슈에서 멀리 벗어났지만, 그것은 사실 회피였다. 현실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로 변화를 바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을 일깨워준 것은 다름 아닌 촛불 집회였다. 그러나 난 여전히 아직 행동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렇게 소심하게 글을 쓰고 있다.


- 나의 역할을 묻다.

나의 역할을 스스로에게 조심스레 묻고 있다. 역할은 고민할 필요도 없다. 촛불 시위의 정당성을 이야기하는 것, 설득하는 것, 앞으로의 방향을 예측하고 행동하는 것, 이것이 내가 해야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은 남들과 싸운다는, 부딪친다는 아픔이다. 그 아픔을 경험해 보았기에, 아직 치유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기에 여전히 누군가와 다시 싸운다는 것에 대해 두려워 하고 있는 것이다. 상처는 치유된 줄 알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 상처만을 보고 망설이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보다 용기가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용기내어 한발짝, 한발짝 내딛어 보려고 한다. 그러는 도중, 예전의 상처가 더 벌어져 더 많이 아플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걸어가야겠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아주 조금씩이라도.


2008/06/15 22:56 2008/06/15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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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udolph 2008/07/05 2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처가 더 벌어지면, 약바르고 밴드로 꽁꽁 묶고 일어나서 다시, 조금씩 조금씩 걸어가요 ^_^
    저 밴드 많아요, 빌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