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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시장 유연화 명제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 전명숙

[발제문]


《노동과 페미니즘 - 노동 시장 유연화 명제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 전명숙》

문제제기

지금까지 국내에서 진행된 논의들은 노동시장에서의 고용 구조 변화를 산업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기업 전략의 변화가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고용 구조 변화와 기업 전략의 변화를 연결시키고 있는 국내 연구에서 채택하고 있는 주요한 이론적 논의는 노동 시장의 유연성론으로 집약된다.

노동 시장 유연성 명제는 본래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축적 구조 변화와 노동력 활용 전략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발전되었다. 서구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자본주의 축적 구조 변화 논의에 따르면 노동 과정과 노동 시장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포드주의적 임노동 관계의 경직성을 탈피하기 위해서, 또는 제품 시장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에 대비하기 위해서 기업이 유연성을 증대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분석한다.

기본적으로 노동 시장 유연성론에서 가정하고 있는 전제는 ‘기업 외부에서 활용되는 노동력이나 업무는 주변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정을 확신시키는 근거는 일반적으로 기업 외부화된 생산과정에서 기혼 여성들의 참여가 두드러진다는 자료가 제시된다. 이러한 논의에서 기혼 여성들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주변집단으로 범주화되며, 이 집단의 노동력들이 대거 기업 외부화된 업무에 통합된다면 그 업무의 성격 역시 단순 반복적인 주변 업무라는 가정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은 기업 외부화 요인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가정하고 있다. 실제로 기업이 노동 시장에서 특정 전략을 사용하는 것은 구체적인 산업과 노동 조건으로부터 선택된 결과이며, 따라서 단일하게 주변 노동력의 활용을 통한 노동 경비 절감만으로 외부화의 동기를 일반화시킬 수 없다.

‘기업이 외부화를 추구하는 업무나 노동력의 성격은 과연 주변적인 것인가?’, ‘기업이 이러한 전략을 추구하는 요인은 노동 경비 절감의 효과를 기대한 때문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이 장에서는 의류 산업을 중심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의류 산업 환경의 변화와 생산 조직

우리 나라 의류 산업의 경우 1980년대 후반 이후부터 중소 기업의 비중이 감소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업체 수는 증가하고 있지만 종업원 수는 감소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류 업체의 소규모화를 특징적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의류 업체에서 이처럼 대기업의 비중이 낮아진 채 규모의 축소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은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기존의 수출 중심 대규모 의류 업체가 점차 내수로 전환하면서 자체 공장의 시설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란 점이다. 둘째, 내수 시장에 이미 참여하고 있던 의류 업체나, 신규로 내수 시장에 참여하는 업체도 점차 자체 공장에서의 규모를 축소하고 기업 외부에서 생산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ex) 이랜드 - 16개의 브랜드

의류 산업 환경의 변화

의류 산업은 1980년대 후반에는 한때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제2위 규모의 수출을 하였으며, 세계 총 의류 수출액의 약 10퍼센트를 차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는 선진국의 의류 수입 규제와 후발 개도국의 급부상, 국내적으로는 무엇보다 그 동안 생산과 이윤의 확보를 가능케 해 주었던 저임 노동력 풀의 고갈로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국내 여건의 악화에 따라 저임금 위주의 수출 전략이 타격을 받는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또 다른 현상은 내수 시장의 성장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대량 생산 체계에 의한 일관 라인 방식이 다품종 소량 생산의 방식으로 변화하게 된다.

내수 시장의 성장과 가내 하청의 증가

내수 생산 업체의 특성

현재까지 내수 시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대략 세 가지로 유형화할 수 있다. 그것은 ① 대기업의 브랜드를 부착하고 판매되는 고가품 의류 ② 일정 정도의 자본 규모를 갖추고 있는 중저가 캐주얼 의류 ③ 재래시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저가품 의류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유형 중에서 수출 중심의 산업 구조하에서도 유지되고 있었던 재래 시장의 제품을 제외하고 새롭게 내수 시장에 주력하게 된 제품 유형은 고가품 의류와 중저가 캐주얼 의류이다.

중저가 상품의 경우 원청기업으로의 가격 하락 횡포로, 재래 시장 위주의 상품들은 더 싼 중국산 제품의 수입, OEM 방식으로 인하여 생산 업체들은 주로 고가품 브랜드를 생산하고자 하며 그 비중도 높다.

숙련 노동력 확보의 어려움

내수용 고가품 의류를 생산하는데 의류 생산 업체가 당면한 어려움은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것은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로 전환하는데 따르는 비용 부담과 숙련 노동력 확보의 어려움이다.

고가 내수품 생산으로의 전환은 생산 과정의 전면적 재조정과 이에 따르는 관리 시스템의 재구조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 재배열과 기계 도입을 통한 생산 체제의 변화를 수반할 만큼 자본을 갖춘 의류 자본은 극소수이다. 대다수의 업체들은 기존의 라인 시스템으로 다품종 소량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가품 내수 의류 생산 업체가 당면하고 있는 두 번째 어려움은 바로 작업장에서 숙련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는 데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이전의 라인 방식에 익숙해 있던 노동자들이 옷 전체의 공정을 맡아서 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며, 봉제에서 숙련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작업 시간의 축적을 요구하는데, 이렇게 장기 근속하는 노동자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업장에서 팀 작업을 활용하는 경우 당면 어려움은 무엇보다도 고숙련공에 대한 인력난이다. 고숙련공의 잦은 이직, 장기 근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의류 산업의 성격등으로 업체측에서 인맥을 통해 다른 업체로부터 스카웃을 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숙련공의 확대 재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가내 하청화 전략

펙(J. Peck)은 숙련 형성에 대한 투자 비용이 높고 위험 부담이 클 경우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두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싼 노동력을 찾아서 공간 이동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 내 재편을 통해 이미 형성되어 있는 숙련에 무임 승차하는 것이다.

의류 산업은 두 번째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기존에 중구, 동대문구 등 도심지와 구로구 등 공단 지대에 집중해 있던 의류 업체들이 서울 변두리와 주거 지역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이전 시기에 주요 노동력을 제공해 주었던 미혼 여성들을 최근 더 이상 구조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어렵게 되자 이를 대체할 저임 노동력으로 기혼 여성을 찾게 되었으며, 그 결과 이들의 존재 조건을 고려해 주거 지역으로 입지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기혼 여성 노동력의 특성을 단지 저임 저숙련 노동력으로서 일반화시키고 있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 결과가 기업이 가내 하청 전략을 증가시키는 것 역시 단순 저임 노동력 활용이라는 측면에서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 방식을 통해서는 여전히 의류 산업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의류 생산 업체가 당면한 딜레마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의류 업체가 대응하는 전략 변화가 적절하게 연결되지 못한 채 남아 있게 된다. 저숙련 저임 노동력이 필요한 제품이라면 대량 생산 방식이 더 효율적으며 이 경우 서울 외곽이나 지방 또는 해외 이전 등 공간적 선택의 폭이 더 넓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주택가로 밀집하고 있는 데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비공식 부문 여성 숙련 노동력의 형성과 존재 조건

기혼 여성의 노동 주기를 통해서 공식∙비공식 간 이동을 사례 연구로 밝힌 한 연구에서는 여성들의 경우 결혼이라는 변수 외에도 나이, 배우자의 유무와 가족 형태, 출산 및 양육이라는 변수들이 여성들의 노동 시장 이동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임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 나라 아동 보육 시설의 절대적 부족은 이미 관련 문헌 연구에서 많이 지적되고 있다. 현재와 같이 탁아에 대한 사회적 지원 체계가 불충분한 상태에서는 개별 여성의 차원에서 양육을 전담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훈련된(공식과 비공식) 30대 숙련 여성 노동력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해 탁아 시설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이를 제공하지 못하는 기업들로서는 사회적 성별 분업에 따른 개별 여성의 일차적 역할을 인정한 상태에서 가내 노동 전략을 채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 개별 의류 업체들이 채택하고 있는 가내 하청 전략은 궁극적으로 자기 파괴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전략이다.

가내 하청 전략의 한계

집에서 작업하는 가내 노동자들의 경우 개인 작업장을 둘 만큼 넉넉한 상황이 아니며 따라서 거주 공간이 곧 작업 공간이 된다. 그리고 작업 공간의 비좁음으로 인해서 숙련공인대도 불구하고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지 못한다.

의류 산업에서 숙련공에 대한 높은 의존에도 불구하고 작업장 내에서 이러한 숙련 형성의 장치와 재생산을 위한 제도는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특히 대부분의 의류 생산 업체들은 장기적 전망이나 구조적 상황에 대한 위기를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인식할 여력 없이 단기적인 대응에 주력하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적 장치에 대한 현실적 절박함을 지연시켜 주는 주요 기제로 가내 하청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2007/04/03 16:17 2007/04/0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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