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주류화 정책 패러다임의 모색 - ‘발전’에서 ‘보살핌’으로, 허라금
《성 주류화 정책 패러다임의 모색 - ‘발전’에서 ‘보살핌’으로, 허라금》
들어가며
여성 정책이 지향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이것은 너무나 기본적이어서 따로 논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여성을 위한 정책, 젠더 평등을 목표하는 정책 등으로 표현되는 가운데 이미 여성 정책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분명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면, 무엇이 여성을 위한 것이며, 어떤 것이 젠더 평등한 것인지는 그렇게 간단히 정의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본 논의는 최근의 여성정책들이 기본적으로 여성발전기본법에 기초해 있다고 보고, 여성발전기본법의 내용을 통해 현재 여성정책이 지향하는 젠더 평등의 성격을 파악하는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사회 정의관에 기초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현재 여성정책이 목표하는바 젠더 평등이 갖는 한계점을 드러낼 것이다. 끝으로 관계를 중심으로한 사회 정의관이 요청됨을 밝히고, 그 위에서 제안될 수 있는 성 주류화의 정책들을 탐색할 것이다.
1. 여성발전기본법의 양성평등과 성 주류화
현재 여성정책이 토대로 삼고 있는 여성발전기본법의 기본 이념은 “개인의 존엄을 기초로 하여 남녀평등의 촉진, 모성의 보호, 성차별적 의식의 해소 및 여성의 능력발전을 통하여 건강한 가정의 구현과 국가 및 사회의 발전에 남녀가 공동으로 참여하고 책임을 분담할 수 있도록 함”에 있다. 이것은 성차별적 의식을 개선하는 것, 여성취약부문에 여성비율을 높이는 일, 여성의 취업률을 높이는 것, 여성에 대한 복지 서비스를 확충하는 것 등을 기본전략으로 삼고 있다.
이들은 정책 대상을 여성으로 한정하는 것으로서의 여성정책을 뛰어넘어, 일반 정책까지도 성차별적 기존제도의 부당성을 인식하는 관점에서 정책의 성별 영향을 분석하고 그 영향이 남녀 불평등하지 않도록 할 것을 지향하는, 성 주류화를 목표한다고 말해진다.
여성발전기본법의 내용은 여성의 사회활동 영역에의 진입을 방해하는 명시적인 차별들을 금지하고, 여성들을 사회 각 영역에 포함시키려는 전략은 분명한데 비해, 일상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차별이나 억압의 원인들을 제거하려는 전략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이것은 양성평등을 그 목표로 삼고 출발할 때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라 해야 할지 모른다. 집단 여성을 집단 남성과 평등(equal)하게 하려는 목표 아래 추진되는 여성정책에서 상대적으로 집단 남성을 집단 여성과 평등하게 하는 방향에서의 정책은 미비한 것이다.
이는 여성을 사회영역에 단순히 포함시키는 것을 목표하는, 양성을 동등한 관점에서 취급하는 평등의 정치학을 넘어설 것을 요구한다. 현실에서 남성과 여성은 결코 동등한 처지에 놓여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성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재하는 성별의 차이가 차별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만드는 지점들을 찾아내고 정책이 개입하여 평등할 수 있도록 시정하거나 지원할 필요가 있다. 여성과 남성의 현실적 권력 자원이 불평등함을 인식하는 차이의 정치학 위에서 성 주류화 정책들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2. 차이의 정치학의 맥락에서 본 성 주류화
차이의 정치학의 맥락에서 추진되는 성 주류화 정책은 기본적으로 여성집단이 남성 집단과의 관계에서 갖는 차이를 부정하기 보다는 인정한다. 그리고 그 차이가 여성을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만드는 불평등한 권력 관계 속에 있음을 중시한다.
평등의 정치학이 법률과 같이 명시적인 남녀 차별을 금하는 정책을 통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향유할 수 있다고 믿는 반면, 차이의 정치학은 남녀의 권력이 비대칭적인 일상의 맥락을 중시한다. 차이의 정치학 위에서 수립되는 성 주류화는 여성과 남성이 다른 이해와 요구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 여성과 남성의 삶을 비교하고, 여성의 삶의 경험을 반영하며, 특정한 개념이 한 성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은지, 성역할 고정 관념이 개입되어 있는지 아닌지 등등 사회 전반에 스며있는 성차별적 요인들을 정책이 목표하는 변화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즉, 성별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가 차별로 이어져온 부정의를 해결하는 것을 핵심 의제로 삼는 것이다.
‘젠더’란 흔히 개인들에게 귀속되는 인성적 특징으로 이해되곤 하지만, 정책의 차원에서 사용되는 젠더란 ‘남성적’, ‘여성적’ 성질과 같이 개인에게 귀속되는 인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성으로서의 젠더’와 구분되는 것으로서, 특정 사회제도 또는 사회구조를 가리키는 “젠더”가 있다. 그것을 우리는 ‘구조로서의 젠더’라 부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젠더”가 무엇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그것은 성차별적 제반 삶의 조건(제도)에 초점을 두어야지 개인적인 성격이나 행동 특징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젠더”란 특이한 기회와 특권들을 결과하는 사회적인 구조와 과정을 서술하고 설명하기위한 개념이지, 단지 “양성”이나 “생물학적인 성과 구별되는 것으로서의 사회문화적 성”과 등치되는 개념은 아니라는 말이다.
차이의 정치학에 기초한 성주류화 정책은 기본법이 취하는 바 여성의 사회진출을 통해 평등을 이루려는 전략만큼이나, 여성이 담당해 온 보살핌의 활동들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그 기여가 주변화되거나 착취되지 않도록 하는 전략을 동반되는 것이 필수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남녀의 관계를 위계적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재생산하는 구조는 남성의 보다 자유로운 임금 활동을 위해 여성은 가사노동을 비롯한 보살핌 활동을 1차적으로 책임지게하고 그 활동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체계에 기인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3. 발전론 틀에서 정책화되는 성 주류화의 한계
WID(Women in Development)에서 GAD(Gender and Development)로의 변화의 틀 속에서 담론화되고 있는 이 같은 성 주류화의 관심은 주로 ‘발전’이라는 큰 틀 속에서 진행된다. 즉, 여성의 이익이 어떻게 소외되지 않고 개발의 이익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 여성이 어떻게 그 발전의 실질적인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가로 이해하고 정리한다. 그러나 이들은 ‘발전’의 가치에 주목함으로써 “인간적인 삶”의 가치에 대한 질문들을 최우선의 의제로 설정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도 속에 있는지 모른다.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 그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여성의 지위를 높이려는 정책 방향이 갖는 문제는 우선, 이들 정책은 국가 발전에서 필요로 하는 여성들에 한정해서만 그 효과가 주로 발휘되게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최근의 몇 가지 여성 정책들을 살펴보더라도 쉽게 증명된다. - 성희롱 방지책, 공무원 채용 목표제, 교직에서의 채용 목표제, 보육정책
보육정책에 대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부정적인 함의를 갖는 것인데, 첫째, 여기에서 여성들은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일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하게 된다는 점이다. 둘째, 여성인력을 활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채택된 보육 정책은 보육 그 자체의 중요성에 정향되어 있지 않음으로 인해 보육되어야 할 아이와 보육을 담당하는 여성, 둘 다의 안녕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여성정책을 남성이 중심이었던 사회를 유지해왔던 논리에 기대어 정당화하는 방식이 갖는 위험성은 주변 상황이 변하여 그 정책이 이제 발전 수단으로서의 효용가치를 갖지 못하게 되었을 때 또 다시 과거로 회귀하게 된다는데서 찾아질 것이다.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기혼여성의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강화되는 보육정책은 더 이상 여성 인력이 불필요해진다면, 여성들은 또 다시 가정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 받을 것이며, 보육은 여성이 당연히 가정으로 돌아가 책임져야 할 사적인 것으로 간주될 것이란 점에서 근본적인 젠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4. 사회정의의 “관계 패러다임”으로의 전환
남성적인 공적 영역을 중심으로 여성적인 사적 활동을 종속시켜온 사회구조로부터 전환적인 변화는 어떤 사회적 비젼 위에서 가능한가?
존 롤스의 사회 정의론에 나타난 “정의로운 사회”는 남성들의 생활 경험을 반영하고 있는 측면이 발견된다. 이들 이론은 “시민”을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며 그 욕구의 실현을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매우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으로 상정하고 있으며, “사회”를 “이들 독립적인 개인들이 상호 호혜적인 계약에 입각해 움직이는 협동체계”로 전제하고, 그 위에서 사회 정의가 무엇인지 그 원칙을 제안하고 있는데, 바로 이런 시민 개념이나 사회 개념은 시장과 같이 가정 밖에서 주로 활동하는 이들에게 비춰진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욕구를 중심으로 선택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나, 계약적 거래 관계로 볼 수 없는 여러 관계들 속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눈에 비친 인간이나 사회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 무엇보다, 이들이 말하는 사회 안에는 상호 호혜적인 거래를 할 능력이 없는 어린아이, 환자, 장애자, 노인 등등이 시민 주체로 등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이들의 필요가 사회 정의의 이름으로 채워지기 어렵다는데서 이들 정의론의 결함은 발견된다.
공적 영역에 진출한 성인 남성을 모델로 하는 독립적 개인 대신 의존적 관계 속에 놓여 있는 인간관 위에서 사회 정의가 무엇인지를 재개념화 할 것을 요구하는 키테이는 이들의 시민적 주체 개념과 기본재 목록을 수정하는 곳에서부터 대안적인 모색을 시도한다. 시민 주체가 될 수 있는 자격으로서 어떤 능력이 요구된다면, 그것은 자신의 가치관과 정의관을 추구하는 능력뿐 아니라 약한 이들의 필요를 돌보는 능력 역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 키테이의 생각이다.
인간 생존에 주어져 있는 기본적 조건은 자립이 아니라 의존이다. 개인이 개별적 분리된 존재로서가 아니라 보살핌의 의존 관계 속에 있는 존재로서 이해될 때, 평등의 개념 역시 수정된다. 개인에 기초한 평등을 넘어서 “관계에 기초한 평등”이다. “관계에 기초한 평등”은 일반적인 개념의 호혜적 성격을 갖지 않기에, 교환적 호혜성과는 다른 종류의 기대에 기초한다.
키테이는 “관계에 기반 한 평등” 개념을 모성적 실천에서 유추한다. 요구가 있는 아이와 그 아이의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어머니 사이에서 보이는 모성적 관계를 사회적 관계의 패러다임으로 삼고자 한다. 모성주의를 가부장적 부성주의를 대체할 미래의 패러다임이라 믿는 것이다.
5. 보살핌의 공적 조직화
보살핌은 분명히 공공 정책의 이슈이며, 서구 유럽과 미국 등 각국의 복지 정책에 압력을 증가시키고 있다.
생산 영역에서 임금을 받고 했던 일만을 경제 활동으로 분류하고, 재생산 영역에서 임금 없이 행해진 보살핌의 일을 비경제 활동으로 분류했던 경제적 범주화는 이제 사회정책이 기초하기에 더 이상 적합한 것이 못되고 있다. 시장 생산 활동만을 사회적 협동에의 기여로 간주하고, 그런 기여자만이 사회기본구조를 통한 기본재들의 분배에 자기 몫을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간주하는 부성주의 사회구조 아래에서는, 여성정책은 생산 영역에 여성들을 진출시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데 역점을 둘 수 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최근의 변화는 이런 여성정책의 방향 전환을 가능케하고 있고 또한 요구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독립적인 생계부양자의 역할을 만족하도록 지원하는데 복지정책의 목표가 있다고 보는 기존의 시각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생계비를 버는 남성은 독립적이고, 임노동 대신 보살핌의 부불 노동을 하는 여성은 의존적인 존재라는 왜곡된 도식을 만들어 냈던 논리이다. 인간이 자립적일 수 있다는 것은 현실의 삶이 의존적 관계를 떠나서는 존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렇듯 자립성을 이상으로 삼는 이데올로기는 복지 정책의 수급 대상자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일하는 이들에게 훈육적인 결과를 낳게 한다.
최근, 부벡과 키테이가 보살핌을 제도화하는 구체적인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부벡은 가사노동과 여성주의 보살핌 윤리를 연결시키려는 글에서 공적으로 계획, 조성된 예산에 의해 유지되는 강제적이면서 젠더 중립적인 군사 서비스 모델에 기초해서 “보살핌 서비스”를 설립할 것을 짤막하게 언급하고 지나간다. 이와 달리 키테이는 보살핌 노동에 대한 보상을 사회화, 보편화하는 것을 옹호한다.
나가며
이 글에서 제안하고 있는, ‘발전에서 보살핌으로의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에서 요구되는 기본적 사회 정의의 시작을 바꿔나가는 것도, 그것을 구체적으로 정책화하는 일도 결코 용이하지 않을 것이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 실현가능성을 밝히고 구체적으로 추진해 가는 일은 여성 정책과 관련된 여러 분야의 협력에 의해서만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여성의 삶의 조건들을 현실화시켜온 여성의 역사는 본문에서 제안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가능함을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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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거 가져가두되나요?^^
ㅎㅎ 물론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