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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8/01 미스코리아와 아나운서 (2)

미스코리아와 아나운서

한 방송국의 아나운서가 미스유니버스에 참가한 일을 가지고 한동안 시끄러웠습니다.

이것이 정말 잘 한 일이냐라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그 아나운서의 일거수 일투족이 보도되는 것등

많은 논란과 이슈를 만들었던 사건이었습니다.



해당 방송사에서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아나운서가 그러면 어떠냐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타 방송국 국장이라는 사람에게 비판을 당합니다.

아나운서가 미스유니버스에 참가한 하나의 사건은

자칫 두 방송사의 싸움을 불러일으킬 뻔 했습니다.



이 사건은

다른 곳보다 비교적 의견개진이 편하고, 많은 의견이 올라오는 인터넷에서

하나의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아나운서가 비키니를 입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반대보다 찬성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아나운서의 선정성은 전체 아나운서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던 타 방송국 국장의 의견보다

해당 방송사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는 것처럼 비춰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아나운서의 단정한 이미지의 보수적 성향과

아나운서의 파격적 의상이라는 진보적 성향과의 논쟁으로 확대되는 듯 하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문제의 핵심이

아나운서가 비키니를 입었다, 입지 않았다에 맞춰져야 되는 것일까요?

단지 선정적이다, 그렇지 않았다에 맞춰져야 되는 것일까요?

모든 논의가 이에 따라서 흐르고 있지만,

전 이런 논의가 우리가 정말 생각해야 할 것들을 흐리고 있다고 봅니다.



문제의 핵심은

아나운서가 비키니를 입었다, 입지 않았다가 아니라

아나운서가 미인대회에 나가도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미스 유니버스대회의 실상은 미스코리와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계의 다양한 미를 하나의 획일적 가치에 따라서 줄 세우는 것입니다.

결국 등수매기기의 놀이이니까 말입니다.

모든 사람은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스코리아대회나 미스유니버스의 경우에는

미에는 확실한 기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준은 대부분 서양의 시각에 맞아 떨어집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미스코리아의 입상자들의 얼굴이 점점 서구화되는 것은

이를 잘 반영하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나운서는 기본적으로 방송인입니다.

방송인은 기본적으로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언론의 주요한 기능 중 하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 '아나운서가 미인대회를 나가도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는 바로

'아나운서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의 문제와 맞닿드려져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보여지는 것만이 강조되는, 주어진 대본을 낭송하는 앵무새 같은 존재들인가

아니면 방송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그것을 바꾸어 낼 수 있는 존재들인가의 문제입니다.

실상 이번 사건은 바로,

전자의 의견에 크게 힘을 실어줍니다.

타 방송국의 국장의 비판에서도 '아나운서가 미인대회에 참가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라고 말했으니 이에 피해갈 수가 없겠지요.

결국 두 방송사 모두,

아나운서의 입지를 단순히 '얼굴마담'으로 좁혀놓는데 크게 기여 한 결과가 되어버렸습니다.

차이는 어떠한 모습이 좀 더 얼굴마담으로서의 역할을 잘하는가였겠지요.

어쩌면 방송사에는 이미 아나운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인대회에 참가하도록 했고

그것이 방송사에 더 많은 이득을 안겨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요.


이들은 모두

아나운서가 좋은 이미지를 가질 것이냐, 나쁜 이미지를 가질 것이냐에 대한 논쟁만 할 뿐이지

아나운서의 역할이 무엇이냐에 대한 논쟁에 대해서는 거론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입지를 '이미지 좋은 사람들의 모임'으로

좁혀놓는 결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마치 이것 - 이미지의 문제 - 이 문제의 핵심인 양 이야기했던 것이지요.



저는 아나운서가 비키니를 입든, 무엇을 입든 그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자신만의 사적인 공간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고,

공적인 공간이라고 할지라도 시청자들에게 있어서

불편함만 주지 않을 정도의 복장을 하면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나운서의 권위는

그 사람이 양복을 입었느냐, 캐쥬얼 복을 입었느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아나운서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마치 고상한 척 메이커로 치장된 옷을 입고 다니면서

자신이 소화하지 못하는 언어를 내뱉는 사람이 되면 안되겠지요.

어떻게 입느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느냐 역시 중요한 것입니다.



전 아나운서가 앵무새가 아니였으면 좋겠습니다.

만두파동때 '그래도 전 오늘 만두를 먹겠습니다.'라고 이야기했던 한 아나운서가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을까요?

혹시 제 머리속에도 아나운서하면 정형화된 이미지를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되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라 저 또한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006/08/01 14:59 2006/08/0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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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izk 2006/08/04 2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일이 있었군요.. 뭔가 TV에 나오는 모든 사람이 연예인으로 인식되고
    그것에 대해 예민한 반응으로 말이 많은 세상인 것 같습니다.
    아나운서가 앵무새가 아니기를 바란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얼마 전 수해 관련 뉴스에 날씨 아나운서가 우비를 입고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어쩐지 - 나름의 위선인가, 까지 따진다면 머리아파지니까 싫어요 -
    굉장히 좋아보였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시작이 누구 아이디어였는지 몰라도
    다음날 뉴스에 정치인들과 국회가 수해피해관련 회의를 하는데 모두 하나같이
    줄줄이 우비를 입고 앉아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속으로 왠지 웃음이 나왔습니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노란 우비를 입고 옹기종기 앉은 모습이 귀여워서(실례)
    이기도 했지만 그것이 어디까지 국민들에게 어필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결국 문제는 브라운관에 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을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어한다는 것이겠지요. 어찌보면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모습이
    브로드캐스팅 된다면 누구나 너무도 당연하게 드는 생각이겠지만,
    그 전국민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만큼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만이
    TV 속에서 진정한 빛을 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나 드라마 속의 연기자들을 보아도 금방 알 수 있어요.
    카메라를 의식하고 예쁜 얼굴을 유지하려는 배우와,
    얼굴이 망가지는 것을 신경쓰지 않고 통곡하는 연기에 몰입하는 배우..
    공인들 뿐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다른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올곧은 생각과 자세를 관철하는 사람만이 멋진 사람의 모습일겁니다.

    • 2006/08/04 2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 그런 일이 있었군요.
      국회의원들이 모두 우비를 입고 앉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로 가슴이 매우매우 답답해 지는 것은 왜일까요?

      선거라는 것이 어느새 이미지선거가 되어버린게 오래지만,
      그래도, 그래도 현란한 이미지들 속에서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진심만은 있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골프여행에다가 말도 아닙니다.

      물론 그들도 할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책임을 떠맡고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 높은 도덕성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왜 모를까요?ㅠ

      맨 마지막 말이 너무나 맘에 듭니다.
      '다른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올곧은 생각과 자세를 관철하는 사람만이 멋진 사람의 모습' 이라는 말..
      ㅎㅎ 나태해져 있는 저 자신에게 채찍질이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