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통을 읽다 - 얼뜨기 진보
다음은 연세대학교 신문 중 하나인
연세통 제23호에 실렸던 기사 중 '연세여, 통하라'라는 기사입니다.
여전했다. 건너기전에 만원버스와 정문 앞 건널목은 진화계통에서 갈라져 나온 형제라는 주장을 다윈씨도 직접 걷다보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하는 망상. 여전히 보아도 또 보아도 저 군중들과 나는 혈기왕성한 피를 가진 한창때라는 생물학적인 동질성외에 뭐가 공통점일까 의심을 던져주시는 우리 사랑스러운 연세인들. 그 외에도 ‘나 하나 없이도 연세는 굴러 가더라’ 라는 사실은 사춘기 때 세상다 산 듯한 인상과 한숨의 이중주 후에 어머니의 애정이 듬뿍 담긴 ‘공부나 해!’라는 멘트와 콤비로 오는 주먹을 맞고 형이상학적 고민이 물리력으로 치환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 후 덤덤해지는 모든 고민처럼 징그럽게 그대로였다. 변한 건 없었다. 맙소사!
고백을 하나 할까 한다. 본인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떻게 들어도 묘하게 즐거울 수만은 없는 ‘잘 먹고 잘 살아라’라는 진리를 체득한 후 반복학습신공과 암기력비급으로 연세지파에 입문했다. 그 후 술을 벗 삼고, 소저들에게 심취하고, PC대련 방에서 비무를 즐기며 살았으나 연세지파 내부의 학자금편 인상논의와 그 외에 모든 학생회련의 움직임은 즐 이요,(사실 즐도 아니였다. 뭘 알아야 하던지 말던지하지.) 지파내부의 훤히 모순들은 좀 불편하기는 했지만 역시 딱히 어떻게 해볼 생각은 없었다. 우민인 본인은 흘러가는 물처럼 그저 흐름에 쓸려, 쓸려가는 지도 모르는 자였다. 그렇다고 지금은 아니라고? 지금도 똑같다.
그러나, 그런 나이기에 이야기 할 수 있다. 내가 그러듯이 대부분의 우리 다양한 학우들은 머리에 두건쓰고 학장실로 등록금 인하를 주장하며 용감하게 절대 돌격 안한다. 왜냐구? 하지 않을 수도, 하기 싫을 수도, 모를 수도, 기회가 없을 수도, 등등 획일화 시킬 수 없는 없는 수없이 다양한 이유들, 즉 그들의 개성이 눈 시퍼렇게 뜨고 있기에. 누가 감히 오만하게 그들의 개성을 짓밟으며 획일화 시켜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가? 포기해라. 그대들에겐 그럴 권리도, 힘도 없다.
그렇다고 지금 대학 돌아가는 꼴을 그냥 지켜보기엔 왠지 배알이 꼴린다. 그러니까 주절대는 거다. 까놓고 애기하자. 뒷골목의 낙서처럼, 신문지에 끄적이고, 입 삐죽하게 내밀고 투덜거리는 거다. 그러다 보면 공감되는 사람들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뒷다마 까듯이 삼삼오오 모일지도 모른다. 거창한 대의는 필요 없다. 욕 하는 건 만국 공통이니까. 수준 낫게 흑색선전, 비방도 치워버리자. 지금 그대로 하는 꼬라지만 봐도 욕이 튀어나오지 않는가? XXX!! 진실된 욕은 정말 뜨끔할 것이다. 그리고 진짜 시원해진다. 이 놀라운 효능을 어찌 사랑스러운 연세학우들에게 전파하지 않으리오? 안 그런가?
적극적 동조자들은 항상 소수다. 고로 학교에 대놓고 욕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활동가들도 역시 소수이다. 그러나 그냥 욕하는 것도 나름 재미라, 나도, 그리고 대다수도 일상적으로 욕을 내밷는다. 그러나 둘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대놓고 하던 심심풀이로 하던 우리는 욕으로 통하는 동지! 그러기에 뭐든 우리 욕의 대상들은 심히 아플 것이다. 대놓고 하는 욕 뒤에 수많은 자들의 동의가 있음을 깨닫을 것이기에.
여기까지 내 이야기를 듣고 재미에 귀가 솔깃한 모든 사람에게 고하나니 그렇게 하고 싶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필요한 것이 딱 하나있다. 우리를 개운하게 해줄 욕을 게워낼 장소! 모이고 모인 욕을 모아서 누군가에게 뿌려 될 저장소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연세통을 추천한다. ‘어떤 검열 및 심의도 거부 합니다’ 얼마나 멋진가! 눈치안보고 욕해도 된다! 곳곳에 잘 매복해있고, 한 면에 깔끔히 끝나는 기사들은 어중간히 흐늘거리지 않고 할 욕 다한다. 다만 한정된 지면과 우리 다양한 욕객들의 취향을 만족시키기엔 색깔이 무난하지 않지만. 우리도 북적북적 모여 낄낄댈 곳이 있어야 신명나게 내밷을거 아닌가? 이런 점이 싫다면, 다른데도 굳이 상관은 없다. 내밷을 수만 있다면!
앞서 이야기 했듯 나 같은 놈은 쉽게 안변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변화를 원하지 않는 건 아니다. 무지, 혹은 무관심, 혹은 기회가 없었을 뿐. 소극적 동의는 얼마든지 팍팍 지원해줄 수 있다. 이걸로 앞서서 욕하는 자들의 실탄을 꽉 채워 뭔가 쓰러질지 모른다. 참으로 기대되는 어떤 일이. 여전한건 이제 끔직 하게 지겹다. 이것을 동의하는 그대여, 그러니 부탁한다. 우리 연세인들이 통할 수 있게, 같이 모여 욕 하자고 호객 좀 부탁한다. 서비스 한번 끝내 주게 우릴 흥분시킨다고 애기하면서!
<연세여 通하라?>
■ 간만에 연세통을 읽다.
학교가 어수선하다. 누군가는 정치판에 빗대어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는 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누군가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누군가는 반쯤은 호기심으로 벽에 붙은 자보들을 살펴본다. 그 와중에 제23호 연세통이 발간되었다. 내심 궁금한 마음에 들었던 연세통은 위와는 다른 기사로 인해 나의 마음을 하염없이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 연세여 通하라
연세통 제23호 15면에는 하나의 기사가 실려 있다. 바로 <연세여 通하라>라는 기사가 바로 그 문제의 기사이다. 앞에서 내심 이번 총학생회 관련한 사건에 대해 알차게 정리하려고 했던 연세통의 노고에 감사를 보내려는 순간, 맨 마지막 이 기사를 보고 그 생각을 철회해 버리고 말았다.
<연세여 通하라>는 본인의 과거의 기억, 그리고 현재의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연세통이 하나의 소통을 위한 공간을 제공해 주기를 부탁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이에 대해 동참하기를 호소한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 말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우리 연세인들이 통할 수 있게, 같이 모여 욕 하자고 호객 좀 부탁한다. 서비스 한번 끝내 주게 우릴 흥분시킨다고 얘기하면서!” 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물론 이것이 본인의 경험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본인의 경험일 가능성이 크겠지만 말이다.
■ 통하기에는 너무 싫다.
농담에는 그에 대한 맥락이 존재한다. 하나의 농담은 어떤 이에게는 성폭력이 될 수도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작년에 한나라당 대표 강재섭 의원은 기자들 앞에서 농담을 던졌다가 호되게 당했다. 그는 기자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했던 농담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나 보다. 
언젠가 술집의 화장실에 붙여있던 표지판이다. 누군가는 농담으로 붙여놨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농담이 아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실제로 옆의 사진과 같은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비로소 몇 년 전에야 성폭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성매매의 경험을 던지며 통하자고 한다. 그것이 본인의 기억이든, 아니든 그것은 나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마치 위에서 기자들이 강재섭이 친해지기 위해서 했든, 그렇지 않았든 말이다.
나는 정말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어떻게 저렇게 자신의 남성성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지 말이다. 만약 글쓴이가 여성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모든 성적인 농담을 거부하자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성폭력, 성매매등 남성중심주의적인 사회에서 반복되고 있는 일들을, 그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담으로 던질 수 있을 만큼의 대담한 사람 역시 아니다.
글을 읽으면서 더욱더 끔찍했던 부분은 바로 ‘나같은 놈은 쉽게 안변한다’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자신감이랄까? 자신의 마초성을 드러낼 만큼 드러내 놓고 변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 더 이상 ‘通하라’의 ‘通’짜도 이야기하기가 싫어졌다.
동시에 연세통의 앞부분에 담았던 총학생회 회칙에 관련된 이야기에 속하는 총여학생회에 대한 기사들에 모든 신뢰가 사라져 버렸다.
■ 연세여 通하라?
나는 자신의 남성성을 드러내며,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이나 성매매에 대해서 쉽게 농담을 던지면서, 우리 한번 서비스 한번 끝내 주게 우릴 흥분시키면서 통하자고 하는 이야기에 글을 쓴 사람도, 연세통도 더 이상 통하고 싶지 않아졌다.
난 이 기사를 통해서 즐거웠던 하루의 기억을 날려버렸으며, 어떻게 이런 기사로 연세대 내에서 소통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할 뿐이다.
다만 일상에 만연해 있는 일들일 수도 있는데 라고 생각하며 한번 꾹 참고 넘어가는 것보다 말 그대로 소통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으면, 그리고 연세통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우리는 언제쯤 통할 수 있을까?



Leave a com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