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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된 민족, 대한민국 –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1. 민족, 그리고 국가

 

당신에게 민족이란 무엇인가. 당신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질문에 누군가는 이렇게 답할지 모르겠다. “~한민국!”

2002년 월드컵의 열기로 인해 민족은 재탄생 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억압의 코드에, 축제의 코드가 합산된 것이다. (여전히 억압의 코드는 지독하게 잔존해 있다.) 그러한 민족, 국가라는 코드는 슬금슬금 사회 속으로 파고 들어가 우리 회사를 말하게 하고, 우리 학교를 말하게 하고, 우리 군대를 말하게 한다. 한민족 공동체라는 만들어진 의식 속에서 여전히 대한민국은 하나의 핏줄이 흐르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다시 한번 돼내어 보자. 민족에 대해서 얼마나 말할 수 있는지, 국가에 대해서 얼마나 말할 수 있는지. 아마 대다수는 주위에 흐르는 공기처럼 진지하게 의문을 던져본 적이 없을 것이다. 동시에 막상 본인 자신에게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2. 상상의 공동체

 

민족을 왜 상상의 공동체라고 부르는가. 단순히 민족이라는 개념이 허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상상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베네딕트 앤더슨은 이에 대해 답한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허구적으로 상상된 것이 아니라, 특정 시기에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 구성되고 의미가 부여된 역사적 공동체라고 말이다.

생각해 보자. 왜 나와는 평생 동안 한번도 마주치지, 혹은 만나지 않을 사람을 일컬어 같은 민족이라고 이야기하는지 말이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왜 한국 곳곳에 세워진 이름없는 참전군인의 동상을 보며 애도를 강요 당하는지 말이다.

 

3. 민족은 원초적인 것이 아니다.

 

사실 민족이라는 개념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한국 남한에서는 근대화 이후에 비로소 민족이라는 개념이 타자(일본)에 의해서 재구성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70년대 박정희에 의해서 민족은 다시 재구성된다. 역시 타자(북한)를 통해서 말이다. 우리가 현재 생각하고, 말하고 있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과거에도 똑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을까? 분명 아닐 것이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지금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국가, 민족이라는 개념을 삼국시대를 해석하는데 투영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과 같다.1 민족이라는 개념은 사회의 물적 조건에 따라 변하는 하나의 의식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민족이라는 개념도 다른 개념들과 마찬가지로 발명되었고, 사용되어 왔을 것이다. 

 

 4. 민족 탄생의 밑바탕

 

앤더슨의 주장에 따르면 민족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등장한 것이 아니다. 민족이라는 개념이 나오게 된 어떠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그 시기를 유럽의 중세시대에서 찾는다. 

그는 종교 공동체왕조 국가가 사회의 중심이었던 중세시대에서 그 논의를 시작한다. 종교 공동체는 소수의 라틴어 식자층을 중심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자랑한다. 종교는 인간의 죽음에 대해 답하며 힘있는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앤더슨은 이러한 종교 공동체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틈을 비집고 민족이라는 개념이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재 역시 죽음에 대한 물음에 일정 정도 답을 하고 있는 것이 민족이기 때문이다. 현충원, 이름없는 묘비,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과 희생, 이러한 것이 모두 죽음이라는 코드와 긴밀히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종교 역시 여전히 자신의 위세를 떨치고 있다.

라틴어로 쓰여진 성경은 라틴어를 읽을 수 있는 소수의 식자에게만 좀 더 높은 지위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에도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바로 인쇄술의 등장이다. 루터는 라틴어가 아닌 다른 언어(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했고, 이는 다시 대량으로 인쇄되어 대중에게로 뻗어 나간다. 예전과 다르게 라틴어를 쓰는 식자들은 자신의 위치를 잃어만 간다. 인쇄술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라틴어가 아닌 지방어로도 글을 접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인쇄술을 통해 자본을 증식하려는 사람들은 소수의 라틴어가 아닌 지방어를 통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해 내고자 한다. 인쇄 자본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라틴어는 점차 그 지위를 잃어가고, 동시에 지방어는 그 위용이 점차 높아져 간다. 셰익스피어가 만약 영어가 아닌 라틴어로 자신의 희곡을 썼다면, 그는 아마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역사 속에 묻혔을 것이다. 그렇게 지방어의 등장과 함께 인쇄술은 소설, 신문들을 등장시킨다. 이는 엄청난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 서로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동시대인이라는 자각을 심어준 것이다. 비슷한 생활 풍습을 가지고, 같은 지방어로 읽을 수 있는 것. 이것은 나와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비슷한 생활 풍습을 지니고 있다는 동시대성을 탄생 시킨다.

동시에 이러한 상황에서 왕조 국가들은 위기감을 느낀다. 라틴어를 안다는 사실로, 정통 핏줄로 이어져 왔다는 신념은 지방어의 부흥과 동시대성의 등장으로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왕가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전략을 택한다. 지방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 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서 무너지고 있는 권위를 대중의 호응 속에서 다시 살려내자는 것이다.

 

5. 크리올의 등장

 

크리올이란 2세대 사람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점령된 아메리카는 물론 점령인들의 지배를 받았다. 점령인들은 아메리카에서 가정을 꾸리며, 2세를 생산하게 된다. 그는 점령국의 사람이지만, 동시에 아메리카인이다.

그들은 그들의 본국에서 결코 환영 받지 못했다. 그들은 높은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타지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말 그대로 승진이 제한되었다. 이러한 환경은 그들에게 반대로 민족이라는 의식을 심어주었다. '다른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것으로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면, 태어난 곳에서는 그러한 제약을 받을 필요가 없겠구나.' '동시에 내가 태어난 지역에서는 역시 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똑같이 대접할 수 있겠구나.' 이러한 타자성에 의해 민족이라는 개념이 처음 탄생하고, 시작되었다고 앤더슨은 말한다. 물론 그 바탕에는 앞에서 배경으로 이야기했던 동질성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상태였다. 동질성을 바탕으로 한 타자성. 그것은 현재에도 전세계 모든 사람들을 묶어 민족이라고 칭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시에 유럽에서는 앞서 설명된 대중 민족주의에 대한 기원을 찾는 여러 작업들이 이루어진다. 지방어 역사에 대한 연구, 지방어를 이용한 여러 문학 작품의 등장. 더 이상 지방어는 지방어가 아니라 활자어로 변모해 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크리올들에게서 자각된 민족의 개념은 유럽에 복사, 모방된다.

(책의 모든 내용을 소개할 수 없으므로, 간략하게 끝낸다. 뒤의 논의들은 제국주의 하에서 유럽에서 생긴 민족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3세계로 복사되고, 변형되는지 설명한다.)

 

 

a. 민족이라는 개념

 

앤더슨의 민족 개념이 보편적인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인쇄술과 자본주의. 그는 인쇄술과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독특한 공동체 의식이 민족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민족 개념의 범위. 그렇기에 다른 여타 문명에서 이어져 왔던 공동체성, 가족성 등은 민족이라는 개념에 속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시아권, 한국에서의 민족 개념은 유럽에 의해서 결국은 차용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그 과정에서 복제와 변태과정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기에 그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영원하지 않은 하나의 문화적 산물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앤더슨의 민족 개념은 동시에 한계를 갖는다. 민족이라는 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이 민족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b. 2언어

 

라틴어의 등장, 이는 지배층 언어인 라틴어를 쓸 수 있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기득권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현 시대에서도 이는 별로 다르지 않은 듯싶다. 현재에서의 라틴어는 영어가 아닐까? 영어를 쓸 수 있는 사람. 이는 세계의 중심과 그 변두리(비유로서의 변두리)를 연결해 주는 고리가 되기에 기득권을 가질 수 있다. 앤더슨의 논의를 그대로 따라간다면, 미안하게도 역사는 그를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슬프게도 말이다.

 

c. 앤더슨에게서 무엇을 읽을 것인가

 

민족이 자본주의와 인쇄술의 산물이라면 위험하지만 단순 도식화 하자면 우리 사회에서는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일까. 한국 사회는 70년대 박정희 정권에서부터 국가 자본주의를 이야기해왔다. 비참하게는 일본에 대한 기생관광2을 널리 이야기하며, 민족의 부흥과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을 이야기해왔으며, 사회 발전 논의에 대한 귀결점을 국가, 민족으로 만들어 버렸다.

언어라는 동질성을 기반으로 하여, 그에 대한 유통을 담당한 것이 자본주의였다면 두 가지가 계속해서 전제되는 한 민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 사회는 재미있게도 언어라는 요소 때문은 아니였지만, 이미 사회가 블록화되어 있다. 지역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언어는 그들을 분류하는 하나의 기준이기도 하다. 민족의 구성과 마찬가지로, 지역주의 역시 동일한(그들 내부에 있어서는), 이질적인(서로에게 있어서는) 언어가 존재하고, 그를 끊임없이 유통시키는 자본주의(경제적 발전 차이, 이익의 차이)가 존재하는 한 그 에너지를 잃지 않을 것이다.
현재 영어에 대한 교육이 강화되고 있다. 그렇다고 그러한 결과가 한국어에 대한 소멸을 가지고 올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어 역시 많은 변화가 있겠지만, 오랜 시간 동안의 역사와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에 쉽게 소멸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끊임없는 변화만 있을 뿐이다. 이미 현재의 민족은 단순히 언어만을 가지고 동질성을 나타내고 있지 않는다. 생성된, 때로는 만들어진 동일한 경험들이 이를 대체하거나 보충하고 있다.
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해 혐오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민족은 생각보다 쉽게 소멸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새로운 민족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하는 것.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적 유통, 확산 방식이 아닌, 새로운 유통, 창조과정을 만들어 내는 것. 이러한 고민과 노력이 뒤 따를 때, 민족이 기존 사회의 틈새에서부터 탄생하였듯이 새로운 공동체의 개념도 지금의 민족의 틈새를 활짝 열고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1. 누군가에게 한국은 삼국통일의 한 핏줄이며, 누군가에게 한국은 세 부족의 혼혈인의 나라이며, 누군가에게 한국은 남한과 북한의 두 나라이다. [Back]
  2. 외화 벌이의 수단으로 성매매를 관광산업에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것. 당시 한일 교류가 풀리면서 엄청난 일본인 관광객이 한국을 찾았고, 기생관광은 하나의 일반적인 코스로 자리잡았었다. [Back]
2009/01/19 23:59 2009/01/19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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