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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1/30 유머와 그렇지 않은 것

유머와 그렇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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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위와 같은 표지판을 보곤 합니다.

꽤 오래전부터 보아왔던 화장실 표지판이지만 요즘들어서는 더욱 눈에 띕니다.


맨처음 위의 표지판을 구상했던 사람은

아마도 사람들의 호기심이라고 할까? 관음증일 수도 있고요.

그러한 것에 기대서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화장실 표지판으로 사람들에게 유쾌함을 주려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전에 우연히 다시 한번 저 화장실 표지판을 보았을 때

저에게는 더이상 웃음이 나오는 표지판이 되질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불쾌하게 느껴지더군요.

위와 같은 행동들은 이제는 단순히 웃음으로 넘기기에는 너무나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단순히 센스로 받아들이기에는 세상은 이미 몰카와 관음증으로 가득 차 버렸습니다.

핸드폰의 카메라 기술의 발달과 개인이 그러한 것을 소장하기 쉬워짐과 동시에

몰카는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 자리잡았습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의무적으로 소리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몰카가 사회적 문제가 되어버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작년에도 위의 표지판과 같은 일이 학내에서, 다른 학교에서도 발생하였었습니다.


유머는 사회적 맥락 안에서 구성됩니다.

미국인이 웃는 지점과 한국인이 웃는 지점이 다르 듯이 말입니다.

또한 나이드신 분들이 즐거워 하시는 것과 젊은 사람들이 즐거워 하는 지점도 다릅니다.

그러기에 유머, 혹은 유쾌함이라는 것은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문화코드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위의 화장실 표지판이 유머의 코드로 자리잡고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지금 우리의 사회가 성폭력이라는 코드를 인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그냥 웃으면 되는 것이지, 굳이 그 안에서 정치적 맥락을 넣을 필요가 있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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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한국에서 아직 개봉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보랏>이라는 이 영화로 인해 평론가들이 다투었던 지점은 위에서 이야기했던 지점과 같습니다.

보랏이라는 주인공은 웃음의 코드를 위해서

자신의 여동생을 창녀로, 자신의 사회를 강간의 천국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것을 한 비평가는 비판을 했고, (http://www.film2.co.kr/feature/feature_final.asp?mkey=4234)

한 비평가는 그 안에서 엄숙함으로 웃음의 코드를 느끼지 못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http://www.film2.co.kr/feature/feature_final.asp?mkey=4235)

이렇듯 무엇이 정치적인 것이냐, 무엇이 그렇지 않은 것이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유머로서 받아들이는 비평가들에게는 커다란 결함이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70, 80년대를 가로지르는 거대서사에서는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만

그들이 읽어내지 못하는 - 위의 경우는 여성문제 - 것에 대해서는

웃음의 코드로 치장하려고 합니다.

이미 정치적 코드화 되어 있는 것에는 큰 비중을 두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는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왜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받지 못하였는가 입니다.

사회 안에서 성문제는 다양한 형태로 제기되어 왔고,

성매매, 성폭력의 문제는 하루아침의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미국 여성의 40%가 생전에 강간의 위협을 받아본 적이 있다고 했었나요.

이미 강간의 나라이기 때문에 그것은 누군가에게 유머로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강간에 의해 희생된 피해자의 경우에는 그것은 더이상 유머로서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동시에 화장실에게 몰카의 위협에 노출되었던 사람 역시

아마도 위의 그림이 걸려있는 화장실을 이용할 마음이 애초부터 싹 사라질 것입니다.

오히려 과거의 안좋았던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기제로서 작용할 수도 있고 말입니다.


누구를 위한 영화이자 표지판일까요?

누구의 웃음코드에 맞춘 영화이자 표지판일까요?


이 두가지 물음에 쉽게 대답할 수 없다면, 아니

답이 있어도 쉽게 대답하기가 꺼려진다면 다시 한번 고려해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유머를 통해 사회를 읽을 수 있고,

사회의 맥락을 통해 웃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유머의 의미에 지나치게 엄숙할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무엇이 좋은 유머인지는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2007/01/30 00:31 2007/01/30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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