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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발터 벤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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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번쯤은 '아우라'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지금은 널리 쓰이고 있는 '아우라'라는 말은 누군가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아우라'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사람이 바로

발터 벤야민(1892~1940) 입니다.



벤야민은

우리가 점점 기술복제시대에 들어서면서 예술작품은 어떠한 모습을 띄게 되는가,

또한 그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사회의 변혁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그는 당시에

대부분의 예술가, 비평가들이 기술복제시대에 보냈던 부정적인 시각과는 달리

기술복제시대의 가능성,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사람입니다.


'아우라'라는 말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감지되는 일회성 분위기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진품 모나리자 그림을 보았을 때,

무언가 달라 보이는 분위기, 그것이 '아우라'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극장에서 배우를 보면서 그 배우에게서 품어져 나오는 일회성의 분위기를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똑같이 재현될 수 없으며,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비슷하게 재현될 뿐입니다.

그에 비해서 영화 속에 나오는 배우에게서는 그러한 느낌을 갖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한편으로는 감상가로서, 한편으로는 비평가로서 영화를 바라보게 됩니다. 배우가 아닌 영화를.


결과적으로 말해서

기술복제시대에는 예술작품에 대한 '아우라'가 점차 사라짐으로써

기존의 예술작품이 가지고 있던 기능 - 마술적, 종교적 효과가 사라집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진품 모나리자 그림을 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과

100장정도 복사된 모나리자 그림을 보았을 때의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진품을 보았을 때 느끼는 특유의 느낌이 바로 아우라라고 이해하시면 될 듯 합니다.


벤야민은 '아우라'를 이야기하며,

이것이 고대의 '마술적'. 근세의 '종교적' 효과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기술복제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아우라'는 사라질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을 맨 앞에서 이끌고 있는 것은 바로 영화이며, 그는 동시에 영화에 높은 기대를 겁니다.


그는 영화를 비롯한 '아우라'가 사라진 예술매체에

'마술적', '종교적' 색체 대신에 '정치적' 색체가 가미될 수 있다고 여겼으며,

이것이 세상의 변혁을 위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영화의 모습이 과연 그러한가요?


그의 말대로 그림을 대체한 사진, 그것도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이

기존에 그림이, 필름사진이 가지고 있었던 '아우라'를 제거했으며,

'영화'의 출현으로 인해

종래의 감정이입에 바탕을 둔 '극적' 연극이 가지고 있던 '아우라'가 일정부분 제거된 듯 보입니다.

이러한 그의 분석은 일면 타당했지만,

그가 예상했던 '정치성'이 가미된 영화, 예술작품들은 현재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찾더라도 그것은 이미 시장에서 도태되거나,

아니면 시장 안에서 시장의 역할을 강화하는 작용을 합니다.



벤야민의 이후에 출간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는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를 도입하며 영화를 비롯한 온갖 매체들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피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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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예술영화든, 산업영화든 이미 문화산업이라는 굴레 안에서 작용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벤야민이 살펴본 것과 같은 희망을 찾기란 힘들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기존의 '아우라'는 사라졌을지언정

비어버린 '아우라'의 공간에는 '자본'이 떡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오히려 예전의 예술작품보다 더욱더 정치적으로 대중을 시장으로 몰고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영화가 대중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은

대중이 그것을 보며 대리만족하면서 느끼는 무력감으로 나타납니다.



위의 이야기들은 20세기 초에서부터 20세기 중반에 걸쳐서 이야기되었던

문화, 예술작품에 대한 두 거장의 분석입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사실 벤야민의 생각보다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생각이 좀 더 현실성있게 다가옵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영화는 자칭 순수하면 시장에 드러설 수 없고,

대중의 수준에 맞추지 않으면 팔리지 않으며,

대중의 구미에 맞는 영화를 만들었을 때에는 이미 자본의 종속아래 놓여있게 됩니다.

그러나 현재에서 벤야민의 생각이 다소 틀리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벤야민이 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대해 이야기했는지를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합니다.

지금이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이야기하는 '문화산업'이 모든 것을 잠식시킨 시대라면,

우리는 '문화산업시대의 예술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여야 합니다.

문화산업시대에 예술작품은 어떠한 상태에 놓여있으며,

그러기에 우리는 어떠한 예술작품을 이야기해야 되는지, 만들어 내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에서 벤야민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비록 그의 생각이 일면 그르다고 할지라도 그의 생각이 현재에서 생명력을 얻을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기에 현재에도 벤야민은 계속해서 누군가에 읽히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될 것입니다.

2007/03/28 20:14 2007/03/2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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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맙습니다~ 2010/04/20 2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이 이해가 잘 안됐었는데 잘 보고 갑니다 ^ㅡ^

    • 2010/04/25 2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도 언제 썼는지도 까마득히 잊었던 글을 다시 읽게 됐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