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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된 공포를 말하다. '미스트' vs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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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요소 약간 존재합니다.)

- 폐쇄된 공간의 공포를 말하다


죽음에 대한 공포, 생존에 대한 공포, 낮설음에 대한 공포, 폭력에 대한 공포, 너무나 다양한 공포들이 존재하지만 고립된 공간에서의 공포 역시 인간의 말초적인 감정을 자극한다. 지금 비교할 두 영화, '미스트'와 '해프닝'은 모두 고립된 공간에서의 인간의 공포, 전율, 극복을 그려낸다.

'미스트'(Mist) 는 말 그대로 안개 속의 공포를 다룬다. 외부가 보이지 않는 만들어진 폐쇄된 공간. 그 공간에서 제한된 사람들이 그 공포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물론 많은 좌절이 공존한다. 그에 비해서 '해프닝'은 조금은 더 열려 있다. 공포의 매개가 바람(사실 이것도 확실치는 않다.)이기 때문에 바람이 부는 곳에서는 폐쇄적인 공간이 형성되지만, 그렇지 않은 공간에서는 다소 열린 공간이 형성된다.
 

- 공포의 원인

공포의 원인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공포의 원인을 발견해 낸다면, 영화는 공포의 원인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혹은 제거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방향으로 이루어 진다. 살인자 영화였으면, 그 살인자를 확인하고 - 원인의 발견- 그 갈등을 해결하는 것에서 끝난다. 혹은 그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슬픈 결말로 끝을 맺기도 한다.

'미스트'의 경우에는 인과 관계가 뚜렷하다. 군의 실험 실패로 인한 재앙. 그러나 '해프닝'에는 공포의 원인이 없다. 아니 공포의 원인을 예측하게 하는 플롯(Plot)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예측할 뿐.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공포의 원인은 자연의 반란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영화는 내내 그것을 확인시켜주지 않는다. 다만 예측하게 할 뿐. 그렇기 때문에 두 영화는 갈 길이 달라지게 된다.

'미스트'의 경우에는 공포의 원인이 확실하기 때문에 - 그것이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외계 생물체의 습격이라고 할지라도 - 영화는 그러한 공포의 원인을 해결해 나가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미스트'는 폐쇄된 공간에서의 인간 군상의 모습을 나름 잘 그려내고 있다. 처음부터 다양한 사람들을 배치 함으로서 갈등의 양상을 다각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사이비 교주부터, 아주 합리적인 엘리트, 자신이 본 것만을 믿는 사람들, 여러 갈등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 공포로부터 신께 의지하는 사람들. 이러한 사람들이 갈등이 심화될 수록, 공포가 극대화될 수록 어떠한 갈등을 빚어내는지, 어떻게 해결해 가는지를 이 영화는 잘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사실 공포영화라기 보다는 '공포'에 대해 이야기한 영화에 더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해프닝'의 경우에는 좀 사정이 다르다. 알 수 없는 재앙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은 더욱더 제약된다. 공포의 원인을 해결하는 방향이 아닌 - 공포의 원인을 알 수 없기 때문에 - 알 수없는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스토리를 그리거나 아니면 '미스트'처럼 '공포'에 떠는 사람들 자체의 관계를 더욱더 섬세하게 그려낼 수도 있다. 그러나 '해프닝'이라는 영화는 전자를 택한다. 바로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을 택한 것이다.


- 공포의 발전

'미스트'에서의 공포는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내부에서의 공포, 그리고 외부에서의 공포. 내부에서의 공포는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비이성적인 행동이다. 그리고 외부에서의 공포는 외계 생물체로부터의 공격이다. 이 두 가지가 복합되면서 영화는 공포를 더욱 극대화 시킨다. 외계 생물체가 습격해 온 다음에는, 내부에서의 분열로 또 다른 공포감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러한 작용은 공포를 증폭시키며, 주인공에게 공포를 벗어나도록 종용한다. '미스트'는 이러한 두 작용을 사실상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데 미흡했다. 외계 생물체와 싸우는 블록버스터의 면을 보여줌과 동시에 인간 내면의 모습을 세세하게 보여주어야 되는데, 두 가지를 함께 풀어내기에는 영화는 너무 제한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미스트'는 공포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나 공포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그리기에는 너무나 단조로울 수 밖에 없다. 공포와의 조우 - 그리고 탈출 - 또 다른 조우 - 그리고 탈출이라는 다소 도식적인 구조를 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에 대한 물음에 정말 최악의 답으로 화답하고 만다. 바로 시각적, 청각적 공포를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잔인하게 시작해서, 가면 갈수록 더욱더 잔인한 모습을 그려 낸다. 그러한 공포는 인과관계에 의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독자들을 영화에 더 끌어 들이기 위해서만 이루어진다. 기존보다 더 잔인해야지만, 관객들은 영화에 말 그대로 그나마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머리 비녀로 자기 목을 찌르는 것으로 시작해서, 사람들이 건물 위에서 뛰어 내리고, 그도 안되서 영화는 머리에 총을 쏘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도 안되서 영화는 잔디깎이에 몸을 던지는 사람의 모습을 그려 낸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공포는 정말 눈에 보이게 자극적이다. 그것도 아무런 이유없이 말이다. 이것이 이 영화를 너무나 가치없기 만드는 이유이자, 말 그대로 비싼 필름으로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 묻게 만드는 대목이다.


- 아쉽다!

사실 두 영화에 모두 아쉬운 것은 바로 수동적인 여성의 모습이다. '미스트'에서의 여성은 공포에 질린 여성, 사이비 교주의 모습, 남성의 보조자일 뿐, 아무런 긍정적인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 그리고 '해프닝'은 이보다 더한 모습을 보여준다. 정말 왜 있는지 모를 정도의 들러리 역할 밖에 해내지 못한다. '해프닝'의 여주인공 '주이 디샤넬'의 아름다움 모습만이 계속 부각될 뿐, 영화 속에서 존재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게 한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그 긴급한 상황에서도 여주인공은 계속해서 아름다운 옷으로 바꾸어 입는다. 그것도 전혀 활동성없는 옷으로 말이다.

'미스트'는 공포 그 자체에 대한 물음과 공포영화로서의 역할을 다하려고 했지만, 그리고 결말에 나타는 철학적인 물음까지 다 던지려 했지만, 너무도 많은 것을 그려내려고 하였다. 마지막에 혼자 남은 주인공 앞에 나타난 상황종료의 모습, 그리고 맨 처음 뛰쳐나갔지만 구조된 여성의 모습에서 인생의 아이러니한 모습을 던지려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영화가 도대체 어떠한 물음을, 아니면 어떠한 주제를 관객에게 던지려는 것인지 뚜렷하지 않게 그려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너무 많은 것을 그리려고 했기에, 오히려 어떠한 일관성을 잃어 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해프닝', 존재 자체를 의심케 하는 영화이다. 아직도 잔인한 장면과 사운드로 관객들이 공포를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너무나 큰 오산이다. 그리고 '일말의' 논리적 구조를 갖추지 못한 영화는 더 이상 관객 앞에 나설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길게 잡아 15년 전의 많은 한국 영화에서 이미 경험했으니까 말이다.  

2008/06/30 02:02 2008/06/30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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