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소고기'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6/08 과학은 정치다 - 미 소고기 파동과 관련하여

과학은 정치다 - 미 소고기 파동과 관련하여


- 과학과 정치의 이분화


대한민국 사회는 과학의 영역과 정치의 영역이 교차하지 않는 서로간의 통섭 불가능의 공간이다. 과학은 과학의 영역에서만 자신들의 논리를 이야기하며, 정치는 나름대로 정치의 영역에서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과학과 정치는 따로 떨어져서 만날 수 없는 것으로, 마치 처음부터 서로가 다른 영역에 존재했다고 믿기 쉽상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과학의 위상은 정치의 위상보다 낮으며, 이로서 많은 과학자들은 불평을 늘어 놓는다. 중국의 지도부처럼 이공계가 인정받아야 된다고 이야기하며, 과학적 사실을 모른 채로 이야기하는 정확한 사실(Fact)을 모르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과학의 영역에서 전해주는 사실이 정치의 영역에서 전해주는 사실보다 더 근본적이라는 과학자들의 자기 위안이기도 하다.


- 미 소고기 파동

미국산 소고기가 수입해 들어온다고 한다. 많은 과학자들은 소고기가 수입되었을 때 광우병이 일어날 확률을 계산해 내었다. 어떤 과학자들은 알츠하이머 병 역시 광우병의 또 다른 이름이라며 다른 변수를 개입시키기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학적 사실 - 실로 보면 찬성자측에서나 반대자측에서나 사용되는 과학적 사실은 같다 - 을 바탕으로 토론은 시작된다.
문제는 우리가 흔히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혹은 하나의 답만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기 쉬운 과학적 사실들이 허구라는 것에 있다. 하나의 과학적 사실을 두고 어떤 이들은 미 소고기 수입을 찬성하며, 어떤 이들은 미 소고기 수입에 반대를 한다. 폐암에 걸릴 확률보다 작기에 미 소고기를 수입하자고 하며, 굳이 무엇 때문에 그러한 확률을 만들어 내냐며 반대를 한다. 하나의 과학적 사실은 하나의 사실이 아니다. 아니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미 누군가의 시선이 투영된 Fact 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관찰이나 추론으로부터 어떠한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인가 역시 과학의 영역이며, 그것은 또한 정치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실상 과학안에 정치가 있었고, 정치 안에 이미 과학이 존재했다.


- 과학자의 위상

그렇다면 과학자들의 위상이 왜 정치인들의 위상보다 낮은 것인가. 이 역시 이번 미 소고기 파동이 명확히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시민들이 미 소고기 파동과 관련하여 분노의 수위를 정권퇴진운동으로 확장 시킨 것은 과학적인 사실에 대한 불만이기 보다는 시민과의 소통의 문제였다. 도대체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대통령이 말귀를 못 알아 듣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답답함이 내 몸 안에 가득차서 분출할 곳을 찾기 위해 거리로 나오는 것이며, 인터넷에 쏟아내는 것이다.
한국의 이공계, 한국의 과학 정보들이 얼마나 많은 고급 정보들을 쏟아내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없이 중요한 것은 마찬가지로 그것을 들어줄 청자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흔히 한국사회에서의 정치의 이슈들은 뉴스를 통해서, 실생활을 통해서 - ex) 공공요금 - 입으로, 혹은 몸으로 전달되지만, 과학적 사실들은 그렇지 못하기에 위상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달되지 못하니 결국 자신들만의 커뮤니티에서 우열을 가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두 가지 선택

결국 과학자 혹은 공학자로서의 선택은 두 가지로 나뉘어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의 폐쇄된 커뮤니티 안에서의 우열 경쟁에 뛰어 들든지, 아니면 그 커뮤니티를 뛰쳐 나올 것인지 이다. 한가지 더 추가할 수 있다면 두 영역을 가로지르고 있는 경계를 무너 뜨리는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현재는 가장 전자, 폐쇄된 커뮤니티 안에서의 우열 경쟁이 가장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의 선택은 대다수의 과학자, 공학자들에게는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 과학은 충분히 가치지향적이다.

과학이 객관적이라는 사실, 합리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과학을 포함한 많은 영역들이 남성적인 시각을 전제로 하여 구성되었음이 폭로되었고, 토마스 쿤과 같은 과학철학자에 의해 사회적으로 합의된 진리일 수 있다는 논의까지 제시되었다.
이러 저러한 역사적 배경이나, 철학적인 배경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번 광우병 사태는 말해준다. 과학이 얼마나 가치지향적인지 말이다. 그렇기에 과학을 하는 사람들의 가치는 알게 모르게 자신의 연구에 투영된다.1 따라서 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연구에 대한 수요자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한 연구인지를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자신이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연구에 참여할 것인가에 따라 아마 연구의 결과와 방향은 어디로 갈 지 모를 것이다.
나는 과학이 일부의 사람들이 아닌, 온 인류에게 통제의 기술을 발달시키는 방향이 아닌, 좀 더 많은 자유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1. 예를 들어 DDS(drug Delievery System) - 약물전달체계에 대한 실험과 같은 경우, 기능성 나노입자, 패치들을 만들어 내는데 엄청난 돈과 자본이 소요된다는 것이 기저에 깔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펀딩이 잘 되고 있는 의학분야에서 주도적으로 자본과 연구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DDS가 연구되고, 개발되었을 때 그 수요자가 누구일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준다. 다름 아닌 그러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일 것이다. [Back]
2008/06/08 15:32 2008/06/08 15:32

Trackback Address :: http://hyuk.co.kr/trackback/207

  1. Subject: 대한민국 헌법 제 127조

    Tracked from 래디컬 바이올로지스트 (Radical Biologist) 2008/07/04 05:34  삭제

    "저는 서울시장 시절, 과학기술 연구에 예산 1000억원..

Leave a com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