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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5/12 삶은 정말 농담처럼 가벼운 것일까 - 밀란 쿤데라의 ‘농담’

삶은 정말 농담처럼 가벼운 것일까 - 밀란 쿤데라의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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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정말 농담처럼 가벼운 것일까 - 밀란 쿤데라의 '농담'>






 

1.

소설을 읽은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삶에 치여서 이었는지, 내 취향이 아니었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그랬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 그보다도 읽어야 되는 상황이었기에 손에 잡았던 소설책이 있었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이었다.


2.

삶을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몇 년이 지난 다음에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회상하게 되는 그런 때. 나에게도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이 힘들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마치 몸에 배어 있는 듯이 말이다.


3.

아무것도 모르면서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든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그 때에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내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다.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을 것이다. 지금 그 때를 회상하면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그러나 그보다, 많은 것들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지나간 기억들, 이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그런 시절의 이야기일 뿐이다.


4.

그랬다. 그 때에는 정의는 항상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의가 무엇이냐 라고 그 당시에 물었다면 아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냥 정의‘스러운’게 좋았다. 나의 삶의 지향점이자,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은 그에 대한 우상들이었다. 그렇게 세상은 앞으로, 앞으로 나갈 줄 알았다. 이 사람들과의 관계도, 사회의 온갖 모순들도 다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 당시에는 그에 대해 아무런 의문을 던지지 않았다. 


1.

밀란 쿤데라의 ‘농담’이라는 책으로 독서토론을 진행했었다. 토론을 함께 했던 사람들은 예전에 토론했던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나와 처음 접하는 사람들, 지금 현재 나와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속한 과들은 너무도 다양했고, 학교도 달랐고, 성격도 달랐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다름을 사랑한다. 그렇게 난 소설책을 읽었고, 또 시간은 흘러간다.


3.

과거는 분명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 너무도 당연하다. 과거의 관계가 현재의 관계를 짓누를 수도 있다. 예전에는 과거에 대한 생각은 흑백사진의 필름처럼 고정되어 있는, 그리고 변하지 않는 그런 시간들이었다. 그러기에 과거를 회상하는 일은 그리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못하다고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되뇌었다. 과거를 죽은 과거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내 자신이었다. 과거는 살아있는 현재이며, 미래 역시 존재하는 현재이다. 이제 과거는 단순히 회상으로 그치지 않는다. 현재를 바꾸는 것은 곧 과거를 바꾸는 일이며, 미래를 바꾸는 일이다.


4.

한국근현대사는 정말 역동적이다. 억압과 해방이 연속적으로 드러나는 역사이기도 하다. ‘농담’에서의 체코도 역시 그러하다. 한국의 근대사가 개발주의, 독재, 군부체계로 억눌러 왔다면, 체코는 마르크스주의의 망령이 사회를 지배했다. 모두가 엄숙해야 하며, 모두가 사회비판적이어야 하며, 모두가 혁명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개인들을 옭아맨다. 한국에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반대로 말이다.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모든 사회비판서적들은 전부다 폐간되었고, 유통조차 불가능했다. 물론 지금도 많은 서적들이 출판이 금지되었지만 법이 사문화되면서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불법이지만 불법이 아니다. 역동적이었던, 빠르게 변화해 갔던, 체코와 한국의 역사가 비슷해서 이었을까?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한국사회와의 유사성으로 인해서 이었는지 너무도 유명해졌다. 한번쯤은 들어봤을 책 이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누구나 들어보지 않았는가.

사회가 역동적일 수록 움직이지 않는, 뿌리가 깊은 사상에 매력이 끌리는 법이다. 내 대학생활도 그런 사상들과 함께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내 생각도 많이 변했고, 주위에 만나고 있는 사람들도 다르다. 그리고 난 현재 나의 삶을 최대한 사랑하고자 노력 중이다. 물론 때때로 내 삶이 맘에 들지 않을 때도 있다.


2.

모른다. 정말 세상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과거를 향해 짓는 웃음은 미래에 대한 웃음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세상은 마치 농담인 것처럼 흘러갈지도 모른다고 내게 말한다. 그렇게 허허 웃으면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라고 말하는 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면 정말 편할지도 모르겠다.


1.

다른 사람들과 독서 토론회를 시작했던 이유는 더 이상 현재에 안주하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더 넓은 공간에서, 더욱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었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고 나 역시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가 궁금했다.

쉽게 살지 않겠다. 힘들게 살려고 한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으면 부딪쳐 보련다. 삶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살기에는 너무도 많이 나가버렸다.


4.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이제는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난 뒤 많은 것들이 변해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최선을 다할까 한다.


1.

사상에 짓눌려 있었던 체코의 사회든, 현재까지 개발주의, 반공주의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한국 사회든 상관없다. 사회의 흐름에 도태될지도, 버림받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회의 흐름에 못이기는 척 몸을 맡길지도 모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을 지도 모른다. 한 20~30년이 지난 뒤에 과거의 것들이 ‘농담’처럼 기억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할 것이다. 세월이 지난 뒤 설사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지라도 힘들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2.

웃을 것이다. 과거의 기억으로 - 더 이상 회상이 아니다. - 웃을 것이고, 현재의 모습으로 웃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간 과거의 웃음이 아니다. 그 웃음은 나의 삶, 그 자체를 받아들이려는 어쩌면 힘들지도 모르는 그런 웃음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통째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수없는 모순이 존재하는 사회에 편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낙오자가 될 지라도 웃을 것이다.



한 개인의 삶은 역사의 흐름에서 비춰보았을 때 농담일 수 있지만, 그 개인은 결코 자신의 삶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농담은 가볍지만 농담은 무겁다.

2007/05/12 23:24 2007/05/12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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