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청소부'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08/31 당신은 난장이인가?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당신은 난장이인가?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당신은 난장이1인가?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굴뚝 청소부


두 명의 아이가 굴뚝 청소를 하였다. 한 아이는 얼굴이 까매졌고, 한 아이는 얼굴이 까매지지 않았다. 둘 중에 누가 얼굴을 씻어야 할까? 수학적 도식처럼 생각했을 때에는 얼굴이 까만 아이가 씻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 얼굴이 까만 아이는 상대방을 보면서 자신이 얼굴이 하얗다고 생각할 것이고, 얼굴이 하얀 아이는 상대방을 보면서 자신이 얼굴이 까맣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얼굴이 하얀 아이는 자신의 얼굴을 씻으려 할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에서 두 명의 아이가 거울을 보고 자신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든지, 위의 이야기는 너무 제한된 답만을 제시한다든지 하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답을 구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현상들은 바로 수학적 도식처럼 논리적 전개를 거치지 않고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학적 도식들은 전제되어지지 않은 한 별개의 두 항이 서로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사회는 서로가 서로에게 있어서 상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여기서 한 번 더 문제를 비틀어 버린다.

다시 묻는다. 두 명의 아이가 굴뚝 청소를 하였다. 한 아이는 얼굴이 까매졌고, 한 아이는 얼굴이 까매지지 않았다. 둘 중에 누가 얼굴을 씻어야 할까? 혹자는 얼굴이 까만 아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고, 혹자는 얼굴이 하얀 아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야기한다. 둘 다 굴뚝 청소를 하였는데 한 명은 얼굴이 하얗고, 한 명은 얼굴이 까맣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같은 굴뚝에 들어갔으며, 동일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우리는 동일한 사회에 살고 있으며, 동일한 지배법칙 하에 놓여 있다. 누군가는 이 사회의 법칙에 벗어나 살고 있으며, 누군가는 이 사회의 법칙의 가운데 살고 있을 수 없다. 이미 동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 동시대에 산다는 것


동시대에 산다는 것은 알게 모르게 동일한 사회적 전제 하에 놓여서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화폐를 가지지 않고 사회생활을 하기 힘들며, 언어라는 약속된 기호를 가지지 않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다수의 사람들의 생각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비상식적이라고 이야기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살아간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우리에게 동시대에 산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난장이 가족들의 일상사를 바탕으로 하여 그와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이야기한다. 그들은 다른 공간에서 살지만 결코 단절되어 있거나 고립되어 있지 않다. 사업주의 행위는 그 사업장에서 일을 하는 난장이 가족들의 생활에 영향을 끼친다. 난장이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 사회적으로 - 난장이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한 주부도 역시 난장이와 동시대의 인물이다. 그들 모두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를 ‘자신들의 눈’으로 바라보며 긍정하기도 하며, 부정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에 대해 사고하지 않으려고 하기도 한다. 모두가 같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생각하는 방법이 다르고, 행동하는 방법이 다르다. 작가는 이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담담히 그들의 모습을 비추어 준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이러한 모습들을 12편의 난장이 연작으로 담는다. 12편은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연작들은 각기 다른 시점에서 서술된다. 다시 말해서 A라는 사람의 시점에서 쓰인 연작, B라는 사람의 시점에서 쓰인 연작, 이렇게 구성되는 것이다. 그 시점의 주인공들은 형제일 수도, 남매일 수도, 아니면 아예 모르는 사람들일 수도, 사업자와 고용자의 관계이기도 하다. 다양한 시점을 통하여 시대의 모습을 다각도로 보여주는 작가는 그렇게 동시대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는 처음에 이야기한대로 동시대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보는 시점에 따라 같은 시대를 판이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가 하고 싶은 내용은 이러한 형식과 잘 어우러져 한 편의 작품으로 승화한다.


■ 대립적인 것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이러한 형식과 내용을 바탕으로 중심적 주제를 드러낸다. 난장이는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것을 초극하는 인물이다. 난장이와 키가 난장이보다 큰 다수의 사람들과의 대립, 악덕 사업주와 그에 저항하는 노동자들, 아름다웠던 바다와 그 바다를 오염시키는 공장 폐수, 사회 내에서 타협하여 잘 살아가는 인물과 그러한 사회 내에서 죽어가는 인물. 이러한 대립은 작가가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리고 작가는 이러한 모습을 비춰주기만 할 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아니 나아가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같은 동시대에 살지만 끝없이 죽어가는 사람들과 아무런 생존의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이러한 대립과 모순 속에서 그 안의 인물들은 고민하고, 타협하기도 하며, 싸워나가기도 한다. 사회 안에서 서로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대립과 모순이 극명하게 존재한다.


■ 갈등의 해소


그들 사이의 대립은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여, 그들은 동시대에 살지만 결코 만날 수 없는 곳에 위치한다. 한 부류는 철거 촌에, 한 부류는 지나가는 차도 잘 보이지 않는 으리으리한 저택들이 들어서 있는 곳에 살면서 말이다. 그들은 결코 만나지 못한다. 지방의 사업장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과 서울에서 숫자놀음을 하는 사업자와는 만나지도 못하고, 만날 수도 없다.

그들이 어디에 서있건 작품 속의 그들의 갈등 해소의 요소로 항상 등장하는 것은 성(性)이다. 성은 그들에게 잠시의 유희를 제공해 주지만, 결코 그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여 주지 못한다. 따라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성관계는 타락한 관계의 일면만을 대변해 줄 뿐이다. 문제는 그 갈등해소의 주도권을 지니고 있는 대상들은 모두 남성이라는 것이다. 작품은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성관계와 일방적인 성관계를 구분하지만, 그것은 모두 남성의 시각에 의해 재단된 시각일 뿐이다.

갈등의 해소는 위의 성적 요소와 함께 살인, 자살 등 모두 극한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그 갈등이 가지는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해 줌과 동시에 쉽게 해결될 수 없다는 것도 함께 이야기한다. 그들 모두는 결국 서로 서로에 대한 아무런 이해도 없이 그 갈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마치 태생적으로 지닌, 지닐 수밖에 없는 그런 갈등.


■ 78년의 작품, 그리고 현재


70년대의 아픔을 문학의 형식으로 승화시킨 이 작품은 지금 현 시대에 역시 쉽게 녹아든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2007년 현재에도 여전히 많이 읽히는 책이며, 지금도 그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난장이가 가지고 있는 ‘소외’에 대한 주제가 현재에도 여전히 관통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렇지만 작품이 쓰여 진지 벌써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작가는 78년에 갈등만을 드러내면서 결코 타협하지 못하는 사회의 모습을 그렸다면, 현재의 소설들은 그에 대해 적극적으로 초극하려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것이 20년 시간의 간극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문제의 시작이었고, 우리는 여전히 그 문제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1. 원래 표준어는 난쟁이입니다. 난장이는 난쟁이의 옛말 혹은 잘못 쓰이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는 작가가 쓴대로 난장이의 용어를 사용하였음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Back]
2007/08/31 17:36 2007/08/31 17:36

Trackback Address :: http://hyuk.co.kr/trackback/171

Leave a com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