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오늘은 광복절입니다.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난 기념적인 날이기는 하지만,
이거 광복절에 대한 해석이 다들 제각각이라서
여전히 광복절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는 광복절을 맞아서 큰 행사가 열렸습니다.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통일연대에서 주체한 행사는 많은 이슈를 만들었습니다.
학교측에서는 예년과는 다르게 정말 강경하게 학교 안의 행사를 저지하였고,
조중동을 비롯한 온갖 보수 신문들은 이 행사에 대해서 비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행사를 강행하였던 통일연대 측에서도 한발자국도 물러날 것 같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통일연대에서 하는 이 행사에 대해서
제 개인적으로는 좋다, 나쁘다라고 이야기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자신이 아직 '민족'이라는 것에 대해서 고민이 부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그들을 바라보는 눈이 편치는 않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조중동의 보수신문들처럼 안보를 내세운 불편함은 아닙니다.
제가 불편해 하는 것은 그것이 과연 진보인가라는
민족주의에 대한 오랜 논쟁과 맞닿아 있습니다.
오늘 여기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민족' 혹은 '민족주의'에 대한 논쟁을
심도깊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대학에서 내세운 행사 거부방침이 옳은 것인지 이야기해보고자 이 글을 쓰게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내세운 원칙은 너무나 간단하였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이번 행사가 면학분위기를 크게 저하시킨다는 것이 그 주요한 이유였습니다.
과도한 소음과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것이 그 이유였겠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러한 이유가 너무 우습게 보였습니다.
얼마전에 학교 내에서 현재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동방신기의 촬영이 있어서
많은 중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이 학교 안을 시끄럽게 돌아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고,
또한 연세대에서는 쉴 새없이 매년 많은 숫자의 콘서트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요즘 날씨가 매우 덥기 때문에 학교 안의 연구실에서는
모두 문을 닫고 에어콘을 켭니다. 그 정도로 요즘 날씨는 너무나 덥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상 연구실 안으로 들어오는 소음은
극히 미미하거나 들리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광복절에 몇 년동안 똑같은 행사가 열렸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문제없이, 부딪힘없이 행사를 마무리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달라보입니다.
아니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칠 정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의 정문은 굳게 닫힌 채 한쪽만 열어두어서 교통 혼잡을 일으키지 않나,
건물마다는 그 학교의 아이디카드가 없으면 아예 출입을 금지시키거나,
숙소로 사용될 만한 곳은 모두 플레이트로 벽을 막아버렸습니다.
그리고 14, 15일에는 일부 구역에 정전까지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학교측에서는 이번 행사를 저지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수단을 들고 나왔습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너무 쉬운 곳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올해 한총련 계열의 총학생회가 학기 초반의 교육투쟁을 진행하면서
어느 때와도 같지 않은 학교 측과의 마찰이 존재하였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등록금 투쟁뿐만이 아니라,
송도캠퍼스등 많은 중대한 논쟁이 함께 이야기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여러가지 사안이 합의가 되었던 상황이었지만,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이번 815행사로까지 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이야기하기에는
단순히 대학의 상황만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아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번 사건을 보면서 실질적으로 제기해야 될 문제는
'대학은 과연 어떤 곳'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시끄러운 콘서트는 허용이 되고 이번의 행사는 허용이 되지 않는 모습,
이것은 대학 역시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만약 똑같은 기준 - 연구에 방해가 된다 - 을 적용하였다면
학교에서의 모든 행사는 일체 불허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은,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안된다는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언가 다른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기준이 어떻게 그어졌느냐를 살펴보면, 그 기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 물음에 쉽게 접근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상업적인 행사들은 허용이 되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행사들에 있어서는 불허를 내세운 기준,
그것은 사실 대학은 학문, 연구를 위한 '무정치'의 공간이다라고 표명한 대학의 입장에
'무정치'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어떠한 선택을 하든지 그것은 탈정치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택을 함으로서 정치화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탈정치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을 배제하자는 하나의 정치적 태도이며,
상업적인 행사는 괜찮지 않느냐라고 생각하는 하나의 정치적 태도입니다.
그렇다면 탈정치는 실상 중립적인 것처럼 가장하려는
하나의 고도하고 교묘한 정치적 태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그 구성원들에게, 그리고 그 지역주민들에게,
그리고 사회구성원들에게 있어서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의 일로 조중동은 이미 대학은 학문적이어야 한다며
진부한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예년과 똑같은 주장만을 담은 채 말입니다.
대학이 정치에서, 선택의 영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중요한 것은, 대학은 그렇다면 어떠한 정치적 지향을 가져야 되는가 입니다.
대학의 선택이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면,
아니 오히려 정치적이라면,
그렇다면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선택을 하여야 하는가라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물음에 있어서 저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대학은 최대한 개방적인 곳이, 열려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대학은 그 안의 구성원들 뿐만이 아니라, 그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 숨쉬어야 합니다.
대학은 그 안의 구성원들에게 참지 못할 불편함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방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교류해야 합니다.
(일부의 불편함은 사실 대학안 구성원들의 기득권이었겠지요.)
대학은 사회의 모든 논쟁들, 이슈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고
그러한 것이 제한받는 공간이 아닌,
오히려 그러한 것을 장려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어야 합니다.
이번 행사로 학교 안에서 어떠한 논쟁들이 오고갈지는 모르겠습니다.
예년과 같이 그냥 논쟁들이 조용히 아무 말없이 사라져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나의 문제와 관련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그 구성원들과, 그리고 그 선택으로 인해서 영향을 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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