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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22 현실과 가상, 리얼함과 언리얼함

현실과 가상, 리얼함과 언리얼함


1995년에 상영되어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공각기동대'는

많은 영화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매트릭스도 이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영향을 깊이 받은 영화입니다.


예전의 글에서 잠시 잠시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게 되는 '공각기동대'는

우리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줍니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가상이냐라는 주제부터

인간이란 결국 프로그래밍된 하나의 객체에 불과하다는 의견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압축적으로 다루고 있는 애니메이션이 바로 '공각기동대'입니다.


당분간 지면을 할애하여

이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오늘은 '현실과 가상'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쓰려는 찰나,

제가 쓰는 것보다 더 좋은 글을 발견하여 이 글을 소개하기로 하였습니다.

지금은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에 다니시는 분의 글인데,

역시 '공각기동대'의 후편인 '이노센트'에 관련된 글이고

'현실과 가상'에 대한 고찰이 담겨져 있는 글입니다.

좋은 글이니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원래 다른 사람의 글을 가져오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으나,

워낙 잘쓴 글이라서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밑에는 글씨체, 색깔, 띄어쓰기등을 수정하지 않은 글입니다.

(글이 잠시 끊기는 곳은 제 임의로 띄어쓰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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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inoti99/120010242331



Innocence, (오시이 마모루 감독, 2004)



분명한 사실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필사적으로(?) 전달코자 하는 메시지는

이미 고갈났다는 것이다.

메시지의 결핍을 감독은 현란한 영상 이미지로 보충한다.

마치 현상 너머에 본질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시키듯.

어쩌면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뭔가 그럴듯한 철학적 메시지를 찾아 헤매는

이들을 조소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영상을 보는 법은 그런 것이 아니야, 감독은 이렇게 말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영상을 현상으로, 그 안의 메시지를 본질로 간주하는 독해법은 지배적인 것이다.

가령, 우리는 책을 읽을 때 문자 너머의 의미를 탐독하고자 한다.

의미는 보이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 "지각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것".

하지만 정작 문자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 현상 너머에 무엇이 있겠는가.


감독이 부단히 천착하는 주제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리얼함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이

사이버펑크물의 화두로 제시한 바로 그 문제 말이다.

인간다움과 기계다움, 영혼과 정보를 실컷 뒤섞어 버린 후 감독은 비관적 전망을 제시한다.

감독이 그려낸 인간 군상들은 따라서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다.

인간 아닌 것, 인간에 의해 창조되었기에 마땅히 인간보다 열등해야 할 것들이

인간과 너무나 닮아버렸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

타자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 형성해 나가던 정상 경로가

막다른 골목에 봉착했다는 좌절감,.

복제된 것이 원본보다 우월할 수 있다는 무질서함에 대한 불길한 예감.

우리의 일상이 정보조작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절망....


물론 이 모든 것들은 불행히도 이미 식상한 주제들이다.

쉽게 말해 사이버펑크계의 삼척동자라도 숙지 하고 있는 것들 아닌가.

형식화된, 제도화된 사이버펑크는 저 문제를 우회할 수 없다.

상기해보자면 사이버펑크는 언제나 두 가지 큰 문제를 두 초점삼아 공전한다.

첫째, 언급했듯이 인간다움의 문제, 둘째, 리얼과 언리얼의 문제.

하드코어 사이버펑크에서라면

인간다움은 해체되기 마련이고, 리얼과 언리얼의 경계는 붕괴된다.

(그러나 예외도 있는 법. 가령 "매트릭스"는 언리얼의 세계를 파괴시키는 네오를 영웅화한다.

버르장머리 없는 언리얼은 네오로 대변되는 인간 남성 영웅에 의해 리얼로 환원된다.)

우리의 오시이 마모루도 사이버펑크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과연 유효적절한 것일까.

아래에서는 두번째 문제, 즉 리얼과 언리얼의 문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사이버펑크는 리얼과 언리얼을 일단 구분한다.

그리고 나서 리얼의 지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리얼은 실은 언리얼일지 모른다." 이것이 사이버펑크의 전형적 화법이다.

나아가 사이버펑크는 또다시 이렇게 말한다 : "리얼은 조작된 세계일지 모른다"

"매트릭스"의 '매트릭스'는 조작된 리얼의 유니버셜한 버전이고

"공각기동대"나 "이노센스"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전뇌해킹'은

그 개인적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언리얼의 침투로 무질서해진 리얼의 세계를 인정하거나 혹은 구출하거나.

어느쪽이건 진정으로 리얼한 세계에는 언리얼한 요소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견해이다.

과연 그런가.


그런데, 리얼한 것이 늘 가시적인 것은 아니다.

예컨대 플라톤에게 있어 리얼한 것은 보이지 않는 이데아이다.

언리얼한 것, 이데아의 그림자는 가시적인 것들이다.

이데아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언리얼하지만

세상의 실질적 원리라는 점에서는 또 리얼한 것이다.

이것은 그런데 전적으로 허무맹랑한, 철학사에만 존재하는 흰 소리만은 아니다.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유사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맑스의 "자본"에서 리얼한 것은 무엇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가치이다.

가격이나 이윤은 진정한 의미에서 리얼한 것이 아니다.

가치는 "한 줌의 자연적 소재"도 포함하고 있지 않은 것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적 관계를 매개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본주의의 동학을 실질적으로 규제한다는 점에서 리얼한 것이다.

가치는 리얼하면서 언리얼한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리얼한 것은 한편으로는 언리얼해야 한다 고 말할 수 있다.(또다른 예 : 신)

가령, 자유주의자들과 속류화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이 점을 쉽게 간과한다.

(이들에 비하면 맑스는 이미 이 불안을 예감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일상적 인식으로 파악불가능한 층을 지니지 않는다는 생각은

이미 물신화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파악불가능한 층이 등장할 경우 이를 제거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예를 들어, 하버마스는 생활세계에 침투한 불가사의한 화폐의 논리를 뿌리뽑고자 한다.

자유주의자의 방식은 한결같이 이런 식이다.

즉 사회는 개인들의 투명한 결사일 뿐이고 또 그러해야만 한다는 발상이 그들을 지배한다.

투명함에 대한 집착, 리얼함에 대한 짝사랑은 자유주의자들만의 것은 아니다.

전통적 의미의 사회주의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사회주의자들은 은폐된 사회적 매개를 가령 당이나 인민은행 등을 통해 가시화시키려 했다)

차이가 있다면 자유주의자들은 이미 리얼함만의 아름다운 판타지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현되었다고 주장한다면,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그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통해서 그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오시이 마모루와 자유주의자 / 사회주의자의 거리는 멀지 않다.

이들은 모두 리얼/언리얼의 이분법에 근거한다.

다만 후자의 무리들이 주저함없이 리얼을 선호한다면

우리의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망설이고 있을 뿐이다.

이 세계에는 이미 언리얼한 무언가가 리얼하게 작동하고 있다.

즉 애시당초 리얼과 언리얼은 쉽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며

리얼에 집착하는 자만이 그 구분에 연연한다.

오시이 마모루나 워쇼스키 형제는 생활세계의 식민화를

안타까워하는 하버마스와 유사한 곳에 서 있다.


혹여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리얼함을 지배하는 언리얼함이라면 이미 리얼한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 언리얼은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언리얼한 것처럼 보이는 것, 그것은 낯설음일 뿐이다.

따라서 무엇이 리얼이고 무엇이 언리얼인지 필사적으로 묻는 것은

그 낯설음에 대한 미숙한 반응일 뿐이다.


결국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니체에 도달해 버린 것이다.

2006/09/22 01:02 2006/09/22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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