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6월, 그리고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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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87년 한국의 민주화 항쟁이라고 불리우는 6월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한국현대사의 한 획을 그었습니다.


어제 티비에서는 87년 6월 항쟁을 맞아 20주년 기념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거리에 섰던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그 자리를 비춰주었습니다.

올해는 6월 항쟁이 기념일로 지정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슴 한복판에서 느껴지는 찝찝한 기분은 무엇 때문일까요?


6월 항쟁의 도화선 역할을 하였던 이한열의 죽음을 기리는 행사는 매년 있어왔습니다.

연세대학교에서 매년 학생들에 의해 치뤄졌던 이 추모식은

시간이 점차 흐름에 따라

참여하는 학생들의 수가 점차 줄어들다가

어느새 항상 추모식이 진행되었던 중도 앞 민주광장에서조차 소음문제로 쫒겨나

너무도 조촐하게 치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변해온 6월 항쟁에 대한 기억들, 그리고 이한열열사에 대한 기억들은

이제 20주년이라는 보기 좋은 명함에 걸쳐서 너도 나도 87년 6월 항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방송사들은 앞다투어 87년 6월을 재조명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그 당시에 있었던 소위 386세대들은 저마다 다른 길에서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87년 6월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0년이라는 명함이 가지는 힘은 그야 말로 컸었나 봅니다.


티비 토론회에는

소위 386 - 30대, 60년도생, 80번대학번 - 의 대표적인 정치인들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한 때 같은 이야기를 내밷었던 그들은 너무나 다른 곳에 서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진보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보수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자유를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서로 지금의 상황에 맞게 87년 6월을 기억하며, 해석하려고 합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이야기하는 87년 6월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것을 현재화하는 과정은 많이 양보해서라도 타협하기에도 너무나 멀어보입니다.


87년 6월은 한국현대사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시기입니다.

전두환 정권이라는 독재정권을 물어나게 했던 시기입니다.

지금의 월드컵 응원 못지 않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서 같은 목소리를 냈던 시기입니다.

그런 기념비적인 시기이자 승리적인 역사로 기억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권력을 창출하려는 사람은

이런 시기를 자신의 역사관으로 해석하려고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한국현대사의 승리적인 역사의 순간을 바탕으로 자신이 현재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당시의 사람들과 자신의 생각을 함께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87년 6월을 민주화 투쟁으로 기억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여전히 한국사회의 불완전한 민주화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함께 해야 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민주화는 이미 성취되었고,

지금은 새로운 과제인 세계화, 정보화에 그 때와 같은 원동력으로

극복해 나가야 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들은 저마다 현재 자신들이 생각하는 방향에 따라 87년 6월을 해석하며,

또한 87년 6월의 모습에서 생각의 모티브
(동기)를 얻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 서로 다른 내용들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겠지만,

한가지 공통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현재의 모습에서 과거는 재창조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생각하는 과거가 다른 이유는, 서로가 생각하는 현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이 생각하는 미래의 모습도 다를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살고, 현재를 통해 미래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통해 해석되는 미래와 과거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곧 과거와 미래를 결정짓게 됩니다.

과거동안 걸어왔던 길들이 현재를 만들고,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통해 과거가 만들어지고, 미래 역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87년 6월을 2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어떻게 기억하는가,

그것은 자신의 현재, 과거, 미래를 동시에 말해줍니다.

만약 기억을 못한다면, 그 역시 그 사람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87년 6월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20년이 흘렀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기념하기 위해서 재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를 쟁취했다는 승리적인 기억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것에 항거했던,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기 위해 항거했던
- 많은 소수자들 -,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기 위해 항거했던
- 장애인, 노인을 비롯한 많은 분들 -

역사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단순히 20년이 되었기에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386이라서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일상에서 87년 6월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불의에 항거하며 살기를 바란다면,

그것이 87년 6월을 기리는 것이고

그것이 현재를 만들어가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 이한열, 박종철, 그리고 불의를 위해 싸웠던 산화해간 사람들.

2007/06/08 20:07 2007/06/0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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