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페미니즘

이글은 ipuris 님의 '남성 성희롱 재미들린 방송' 에 대한 트랙백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사람들의 눈빛은 달라집니다.

어떤 이들은 그 단어에 엄청난 적대감을 나타내며 단어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하지요.

과연 그들이 말하는 페미니즘이란 무엇일까요.


보통 페미니즘에 대한 적개심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곧 반남성주의라는 용어로 이해합니다.


페미니즘을

'중산층' 여성들이 남성들에 대해서 적개심을 가지는 것으로서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벨훅스의 '행복한 페미니즘'이라는 책에서는

페미니즘을 반남성주의라고 규정하지 않습니다.

벨훅스는 페미니즘을 반성차별주의라고 규정합니다.

그 이유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압받는 대상은 여성뿐만이 아니라 남성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가부장제 사회에서 이득을 얻는 것은 남성뿐만이 아니라 여성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페미니즘을 반성차별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은

마치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생각이라는 오해를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페미니즘은 곧 반남성주의라는 인식이 뿌리내리게 되었을까요?

흔히들 주류언론에서 비추는 페미니즘의 모습은

위에서 이야기했지만 '중산층' 여성들의 자기권리 찾기로 비춰집니다.

이미 생활의 수준이 넉넉한 여성들이 더 나은 자기 권리 찾기로 비춰지는 것입니다.

사실 페미니즘이라는 말은 단순히 그들만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그렇게 구성되었고 비추어졌던 것입니다.

마치 서구에서 '파워 페미니즘'이라는 용어와 비슷하게 말입니다.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은 파워를 가진적 조차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한순간도 주류가 된 적이 없었음에도

마치 사회를 잡아먹을 듯한 사상이 되어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페미니즘이 누구의 시선으로 재구성되었는지는 이야기를 안해도 될 듯 합니다.



대다수의 성폭력 사건들은

주위에 아는 사람들,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직업을 망론한 '일반남성'에 의해서 자행됩니다.

그러기에

왜 모든 남성들을 성폭력 가해자로 만드느냐라는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이미 대다수의 성폭력 사건이

'일반 남성'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모든 남성들을 성폭력 가해자로 만드려는 것이 아니라

성폭력 가해자의 대부분인 일반남성들에게 그것은 성폭력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왜 모든 남성들을 성폭력 가해자로 이야기하느냐라고 이야기함에 앞서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흔히들 역차별이라는 말을 합니다.

역차별 분명히 존재합니다.

남성으로서 가지는 역차별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남성으로서 겪는 차별이라고 생각한다면

동시에 본인이 남성으로서 가졌던 기득권 자체도 함께 내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남성으로서 누리는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남성이기에 역차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차별을 받지 않기위해서는

남성으로서 누리는 기득권 역시 포기해야 하는게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부장제 안에서 혜택을 누리는 사람,

그 역시 가부장제에 동참하는 사람입니다.

흔히 그런 여성을 보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욕을 하지만,

사실 그들이 비판해야 될 명확한 대상은 페미니즘이 아니라 가부장제가 맞는 것이겠지요.

군대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는 대상은

여성이 아니라 그 당사자인 국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며,

스타벅스의 커피값이 비싼 것에 분노하는 대상은

된장녀가 아니라 초국적 기업이 되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단순히 페미니즘을 반남성주의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다양한 조류의 페미니즘을 바라보지 못하고 소수의 면만을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소수의 면은 기존의 주류언론에 의해서 비춰져왔다고 생각을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학문적 논의와 발전은 상당히 발전했습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책들도 시중에 많이 나와있고,

복잡한 사회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해 놓은 책들도 많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벨훅스의 '행복한 페미니즘'이라는 책 역시 서점에서 팔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의 그 논의들이 아직까지는 아카데미의 영역에서만 다루어지고 있으며

아직 많은 담론들이 이야기하기 쉽게 풀어져 나오지 못하거나 이야기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70년대에는 가정폭력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여성매질이라는 단어가 쓰이곤 하였습니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성폭력이라는 단어는 쓰이지 않았습니다.

많은 노력으로 인해

지금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가정폭력, 성폭력이라는 담론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얼마전 대법원에서는 '가정폭력은 어떠한 경우에서든 용인될 수 없다.'라는 판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판결을 보기 이전에

이미 대법원 이전의 두 법정에서는 아내를 때린 남편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우리사회는 여전히 강간범을 피해서 달아나던 여성이

그 여성을 쫒기위해 차에 매달린 남성을 못보고 몇백미터 운전하여 도망가다가

남성이 죽은 사건에 대해 여성에게 징역을 선고했으며

여전히 강간시 성기삽입이 되지 않으면 강간으로 인정되지 않고 성희롱에 그치는 사회입니다.



성희롱을 하는 여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여성은 가부장제에 동참한 것일 뿐입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이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페미니즘인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덧붙여 주류언론은 페미니즘을 제대로 조명한 적이 없을 듯 합니다.

주류언론은 이미 가부장제에 익숙해져 있으며 그들이 비추는 페미니즘 역시

그들이 원하는 페미니즘만을 조명하겠지요.



간단합니다.

당신이 페미니즘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그리 중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당신이 페미니즘을 어떻게 생각하든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은 멈추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것이 당신이 페미니즘입니다.

2007/01/14 23:24 2007/01/14 23:24

Trackback Address :: http://hyuk.co.kr/trackback/98

  1. Subject: 페미니즘.

    Tracked from ipuris.net 2007/01/15 01:26  삭제

    세상이 너무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것 같아요. 이미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버린 이 사회에서는 '옳은 것'의 기준은 사라져 버렸어요. 물론,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란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한 생각도 해봐야겠지만요. 아, 이런 현상들을 부정적으로 보는건 아니에요. 지금의 사회는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하겠지요 어떤 개인, 어떤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일 뿐이고, 물론 그 집단은 자신의 집단이 아닐 수도 있어요 그렇게 수많은 object들의 커뮤니케이션은..

Leave a comment !

  1. ipuris 2007/01/15 0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긴 글을 적었다가 지웁니다.

    '겉으로 비춰지는, 주류에 의해 왜곡된 페미니즘', 그것이 바로 '대중이 동의하는 페미니즘'이고, 동시에 '대중이 거부하는 페미니즘'은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론은 비슷합니다.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페미니즘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