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세

하루에도 수십권씩 처세에 대한 도서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사람들과 사귀며 살아감이라는 뜻의 처세는
현재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뜻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는 듯 합니다.
처세에 대한 관심이 끊이질 않는 시대에
과연 '처세'는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과연 '처세'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요?
처세를 단순히 사전적 의미로만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은 단순히 둘만의 만남의 아닙니다.
그 둘의 만남은 반드시 그 사회의 흐름 안에서 이루어 집니다.
원시시대의 만남과 현대 자본주의 시대와의 만남이 서로 상이하듯이
만남은 그 사희의 흐름을 담고 있습니다.
'처세'라는 것이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 혹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현재의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주요 가치가 자본주의라면,
처세라는 것은 '어떻게 하면 개인이 가치증식할 수 있을지'와 관련이 됩니다.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본인에게 더 큰 가치증식을 가져다 줄 것인지
어떻게 관계를 맺는 것이 본인에게 있어서 더 큰 가치증식을 가져다 줄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 시대의 처세입니다.
따라서 현재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살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대부분의 처세에 대한 책이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많은 처세 관련 책이 존재하지만
그것들이 서로 대동소이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처세'는
지금 사회의 주된 가치들을
개인적 행동으로 치환시켜주는 것에서 그 의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처세'란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현재사회의 가치를 자신의 몸 속으로 내재화할 것인가 말입니다.
그렇기에 처세는
현재의 흐름 안에 몸을 내맡긴다는 의미로 개인이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를
몸으로 익히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일테니 말입니다.
자본주의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권위적인 사회에서는 그에 합당한 처세가 필요하겠고,
마초적인 사회에서는 역시 그에 합당한 처세가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사회적으로 주된 가치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처세는 달라집니다.
현대시대의 처세는 개인을 지워가는 과정입니다.
개인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하나의 흐름 속에 몸을 맡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흐름을 선이라고 이야기해봅시다.
(흐름은 하나의 방향성을 지니기 때문에 선이라고 이야기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대부분의 처세란 이미 그어진 선을 따라가는 하나의 행위입니다.
따라서 이에 가장 큰 문제는 자신만의 선을 그릴 수 없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하면 기존의 선을 따라갈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선을 긋기 위해서는
기존의 선을 넘어서는 행위가 필요함에도 기존의 선을 따라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기존의 선에 대해서는 세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항적인 선, 하나는 원환적인 선, 하나는 선분적인 선입니다.
이항적인 선은 현상을 말그대로 둘로 나누는 행위입니다.
남성과 여성, 장애와 비장애인등 기존의 서구철학이 가지고 있었던 한계이기도 합니다.
이는 어느 한쪽이 어느 한쪽에 우월하게 인식됨으로서
하나의 차별을 가지고 옵니다.
단순히 둘만을 나누는게 아니라, A형, B형, AB형, O형 이렇게 나눌 수도 있겠네요.
역시 이 안에서도 차별을 가지고 오며,
서로의 항들이 위계를 지니면서 행동하게 됩니다.
마치 O형은 B형의 위에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원환적인 선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나 범위를 생각하시는게 편할 듯 합니다.
쉬운 예로서 대학생들이 보통
자신이 속한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태도가 이에 속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의 공간에서 익숙해져 버리면 다른 공간과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이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강하게 짓는 것이나,
한국인이라는 혈통중심의 커다란 울타리를 형성하는 것도 이에 해당합니다.
실제로 그 안에는 경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또는 무언가에 의해서
스스로 경계를 지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때로는 경계밖에 있는 대상에 대한 적대감으로 표출됩니다.
혈통주의나 가족중심주의, 학벌주의,
연대생들의 알수없는 우월감등이 이에 속한다고 할 수가 있겠네요.
선분적인 선은 본인이 살아왔던 길을 보면 잘 알 듯 싶습니다.
초등학교를 거쳐서 중학교를 들어가,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에 들어오는 하나의 선,
이것이 선분적인 선입니다.
대학 이후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흔히 예상이 된다면 그것은 이미 기존의 선입니다.
보통은 이 선들에서 일탈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며
이 선이 정답인 양 걸어가곤 합니다.
이것 역시 본인만의 선을 그릴 수 없다는 점에서 기존의 선입니다.
이 세가지 선은 기존의 선이 어떻게 그어지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러한 선들을 따라가는 것이 사실 현재의 처세이며,
기존의 선들을 따라간다면 어쩔 수 없이 본인만의 선을 그리기가 힘들어 집니다.
위의 표지로 쓰였던 책은 '선분적인 선'에 대한 책입니다.
30세가 되어도, 40세가 되어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그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20대의 인생의 모든 것인양 서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대로라면 40세가 되어서 다시 공부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것입니다.
20대가 넘어서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것입니다.
기존의 선을 넘어서는 행위,
또는 처세가 아닌 본인들이 스스로의 길을 걷는 행위,
이러한 행위는 결코 쉬운 행동이 아닙니다.
이것은 많은 고통과 번민을 가지고 오며 심할 경우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본인만의 길을 걷고 싶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갈 길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듯 합니다.
기존의 길을 걷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더욱더 많은 위험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본인이 그려놓은 길을 걷는다는 것,
그 자체로서 매우 매력적인 행위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인생이 꽉 막혀서 더이상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그때가 비로소 탈주의 시작입니다.
본인의 인생,
본인의 손으로 그리고 본인의 발로 직접 걸어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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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 책 읽어봤냐..?
이런걸루 책을 써서 돈 주고 사라고 한다니..-_-
정말 대략난감하다..KIN~
ㅋㅋㅋ 내가 설마 이런 책을 사겠니~
그냥 인터넷으로 목차만 봤어.
너 샀나보구나! 아닌가; 말투가 묘해서.ㅎ
헛 전 이책 사서 친구한테 줬었는데 -ㅁ-;;;
물론 모든 인생이 20대에 결정된다고 할 수는 없죠.
독자 관심을 확 끌기 위해 과장한 거겠죠? 아마도?
저는 나름 얻을 만한 게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안타깝게도 지금은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어이쿠 이런. 정말 설득력 없죠. 얻을만한게 있다고 해놓고 정작 내용을 기억 못하다니 ㅋㅋ)
작년 가을이었나(혹은 올해 봄에) 학교 서점에서 선 채로 그 자리에서 다 읽어보고 바로 사서 친구한테 선물로 줬었는데.
그 친구가 현지언니처럼 생각하고 있었다면 정말 대략난감.. ㅜ_ㅜ 흑흑 아니었길 바랄 뿐이에요.
(음. 책 받은 친구가 표지 때문에 들고 다니기 민망하다고 하긴 했지요;;하하하)
이런 책을 '사서' 보기는 물론 아깝지만. 때때로 서점이나 도서관 갔을 때 뒤적여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요. ㅎㅎ
주위 사람 얘기 듣는 셈이잖아요.
나름 정리된 생각이고요.
게다가 이십대 넘은 사람이 남들 이십대때 잘 보내길 바라는 마음에 신경써주는 건데 저야 좋죠 필요한 것만 취하면 되고. ^ㅁ^;;;
(써놓고 보니 완전 구구절절)
ㅎㅎ
물론 책 제목이 과장된거겠지?
그래야 마케팅적으로 유리할테니까.^^
난 위의 책만을 가지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야.^^;;
다만 내가 이글을 쓰고 저 책을 서점에서 잠시 봤었는데
나같은 경우는 위의 글과 같은 느낌이 들긴 했었지.
지현이 말도 맞다고 생각해^^
나도 역시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
다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글을 쓰게 된거였어.
기존의 길을 넘어서려면
기존의 길을 잘 아는 사람일 수록 유리한거거든.
마치 기존의 산행로를 잘 아는 사람일수록, 산을 잘 알수록
새로운 산행로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듯이 말이야.
우리는 좁은 길을 따라서 가는 것이 아니라,
넓고 넓은 광장에 서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