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죽음의 무거움
얼마 전에 저희 할아버지1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종교를 하나의 문화의 코드로 보는 저로서는 사실
죽음 역시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바라보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서 한 종교에서는 죽음에 대해서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어느 한 쪽에서는 곡 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슬퍼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인식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
이것은 저에게 죽음 역시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사회의 문화적 코드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부족은 죽은 이를 식인(食人)함으로서 죽은이를 산자의 몸으로 불러들입니다.
이것이 그 부족이 죽은이를 기리는 방법이고
죽은이와 산자의 경계를 없애는 방법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문화적 코드를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사람을 먹을 수 있냐고
미개하고 계몽이 필요한 사람들로 규정지어버렸습니다.
지금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했지만 어떤 이는 죽음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한편
어떤 이는 그를 보고 어떻게 죽음 앞에서 기쁨을 이야기할 수 있냐고 이야기를 합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코드가 서로 다른 것이지요.
하지만 단순히 죽음을 문화적 코드로만 바라보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해서 '죽음'을 그냥 문화의 일부분으로만 바라보았기에
'죽음'이 가져다주는 무게감이라고 할까요?
그러한 부분들을 바라보지 못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할아버지의 죽음이 그러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죽음, 특히 자신과 가까이 있는 사람의 죽음은
주위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상기시키게 함과 동시에
관계의 급격한 변화를 가지고 옵니다.
서로 얽혀있는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관계를 맺고 있던 한 사람이 사라져 버린다면,
그 관계는 새로 짜여지게 될 수 밖에 없겠지요.
특히 그것이 죽음이라는 엄청난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 죽음을 둘러싼 해석이나 관계, 감정등으로 많은 관계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많은 사람들이 맺는 관계, 장례를 준비하면서 맺는 관계,
그리고 그 죽음을 둘러싼 많은 관계들은 죽음이 가지고 오는 충격(impact)으로 인해
더욱더 빠르게 변화해 갈 것입니다.
죽음을 그냥 그저 가벼운 문화적 코드로 생각했던 것에서
이 사회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코드도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죽음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그 밖에도 더 생각할 것, 이야기할 것들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일주일이 되어가는 밤입니다.
더욱더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할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려고 합니다.
그게 제가 가장 잘 할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는 길인 것 같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누군가는 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친할아버지이냐, 외할아버지이냐 하고 말입니다. 언어가 사람의 인식을 반영한 것은 사실이지만, 굳이 '친/외'로 나누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내부와 외부를 가르듯이 말입니다.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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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음....제작년에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는데....
열씨미 사는것이~~
저를 이렇게 있게 해주신 모든 분들에 대한 보답이겠죠~~!! ^^*
^^ 지연아~ 고마워!
역시 나를 위로해주는 것은 토다이를 사주는
지연이밖에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