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이고 근본적인 반성폭력 운동 상상하기 - 서울대 관악여성모임

[발제문] 


《연세여성연구 6호 - 이론과 실천 : 대학 내 성폭력》


「일상적이고 근본적인 반성폭력 운동 상상하기 - 서울대 관악여성모임


여성의 지위는 향상되었는가, 혹은 향상되고 있는가, 하다 못해 향상될 가능성이라도 있는가? 이 글에서는 대학을 대상 공간으로 하여 대학내 여성의 지위가 달라졌는지 그리고 그 달라짐이 ‘더 나음’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지를 살피고자 하며 그 주된 판단근거를 대학내 성폭력으로 잡고자 한다.


Ⅰ. 변화의 근거

대학내 여성의 지위가 변화되었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다양한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간 대학여성운동의 뚜렷한 성과로 드러나는 것은 반성폭력운동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과 그렇기에 일정한 기간(주로 90년대)동안 변화의 흐름을 찾아낼 수 있는 지점이 대학내 성폭력 문제로 집중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93년 신교수 사건이 드러난 시점으로부터 96년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 그리고 구교수 사건과 98년의 반성폭력학칙제정운동 그리고 2000년 학칙제정 마무리와 상담소 개설에 이르기까지 서울대 내에서 나타난 반성폭력 운동의 흐름과 서울대 여성운동의 전체적 흐름이 이 글에서 언급될 것이다.


Ⅱ. 서울대 반성폭력운동의 흐름 : 93년 신교수 사건에서부터 2000년 학칙 제정까지

대학내 반성폭력운동의 시작을 만든 사건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을 듯한 사건 - 93년 신교수 성폭력 사건 - 은 비록 그 투쟁의 성격이 여성주의적 시각을 명확히 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폭력’이 대학사회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게 한 사건이었다.

당시 학내에는 신교수 사건을 성폭력의 문제 그리고 여성의 문제로 담론화할 만한 뚜렷한 여성운동 세력이 없었던 상황이었지만, 실제로 이 활동을 통해 학내에는 여성운동의 기반이 마련될 수 있었다.

그러나, 93년 이후 학내에서는 점점 성폭력에 대한 공론화가 이루어지고 동시에 학내여성운동의 기반이 만들어지면서 96년 한총련 사태 등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응에서는 뚜렷한 여성주의적 입장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97년에 또 하나의 교수성폭력 사건인 약대 구교수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반성폭력운동은 뚜렷한 관점과 방향을 지닌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 사건은 대학내 성폭력사건이 특수한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에 존재하는 것임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97년 가을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반성폭력학칙제정’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로 다음해인 98년의 총학생회는 학칙제정을 위한 성정치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학칙제정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98년의 학칙제정운동은 두 가지 흐름을 만들어 내었는데, 대학본부를 대상으로 요구하는 ‘강제력을 지닌 학칙으로서의 반성폭력 규정’ 제정과 학생사회 내부를 향한 ‘자치규약으로서의 반성폭력규정’ 제정 두 가지가 있었다.

학교측을 대상으로 하는 강제력을 가진 규정을 만드는 일은 훨씬 더 맣은 노력과 활동을 요구했으며 2000년 6월에야 완성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해 11월에는 시행세칙이 통과되고 그에 따라 ‘서울대 성희롱∙성폭력 상담소’가 개소되었다.


Ⅲ. 학생사회 내부의 변화

학내의 성폭력사건이 다른 공간이 아닌, 학생사회 내부에서 학생들의 자치공간을 통해 해결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공식적으로’ 사건을 처리해 줄 기구가 학내에 없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1. 성폭력 피해 드러내기

대학내 반성폭력운동의 성과는 무엇보다도 성폭력 사건 자체를 공적인 공간으로 드러냄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학생사회에서 주로 취한 전략은 성폭력사건을 가해자의 사과문과 함께 공개하는 방법이었으며 분명 많은 피해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접수되는 사건의 유형 역시 과거에 비해 훨씬 더 급진적인 수위의 성폭력개념을 담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성폭력에 대한 대중들의 의식향상을 엿볼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성폭력은 피해자의 잘못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로 치부되거나, 피해를 당한 사람이 수치스러워해야 하는 무엇으로 생각되지 않으며 나아가 피해자들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요구사항들을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언어로 요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 사건처리 방식

대학여성운동진영에서 택한 대표적인 방식은 사건공개와 가해자 신원공개, 그리고 가해자의 사과문 공개 등으로 이루어지는 ‘공론화’였다.

쉽게 생각할 때 성폭력사건과 그 사건의 가해자를 공개하는 것은 그것은 ‘숨기려’ 하는 것에 대한 반발과 공격일 수 있다. 성폭력을 ‘폭력’이 아닌 ‘관계’로 설정하고 성폭력사건의 피해자를 ‘피해자’가 아닌 ‘공범’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는 지금도 보이는 문제이지만 관악에서 반성폭력운동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이는 매우 심각한 형태로 나타났다.

어떻든, 숨기고 숨기고 또 숨기려 하던 성폭력 사건이 ‘자보’라는 형태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되는 상황이 벌어지자 많은 사람들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피해자들은 그 같은 대담한 전략을 믿고 사건을 신고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되기도 했다. 다른 사건이 공개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피해도 밝힐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다.


3. 공개된 사건의 사례들과 유형

초기에 신고된 사건의 대부분은 술자리에서 일어난 물리적인 성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과나 동아리 등에서 술자리가 많고 또한 그 놀이문화가 다분히 남성중심적인 대학문화의 현실을 생각할 때 이는 그간 드러나지 않고 이름 붙여지지 않았을 뿐 무수히도 반복되어 온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예전의 피해자들은 사건을 신고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했다면 시간이 지날 수록 피해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뚜렷한 언어로 재구성하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조치들을 비대위 및 가해자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후에 접수된 사건들을 살펴보면 ‘일상적 관계의 연장선’으로 여겨지는 원치 않는 스킨쉽이 성폭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가해자가 여자선배이고 피해자가 남자후배였던 사건 역시 성폭력 문제에 있어서 단순한 생물학적 분리선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던져주었다. 또한 물리적 성폭력을 넘어서 문자메시지를 통한 언어성폭력등의 사건들이 접수되면서 그야말로 성폭력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Ⅳ. 2000년 가을 우리의 모습 -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


1. 우리는 변하고 있는가?

2000년 11월 말, 드디어 서울대 학생회관 4층에는 ‘서울대 성희롱∙성폭력 상담소’가 간판을 내걸었다. 3년간의 학칙제정운동의 가시적인 성과물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대학사회의 구성원은 매년 교체되며 따라서 자치운동의 성과물은 남을 수 있어도 자치운동의 역량 자체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보장할 수는 없다. 그리고 학생사회의 자치역량은 점점 감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피해자의 의식은 점점 높아져 가는데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그대로이다. 그것은 어쩌면 애초에 학칙제정운동과정에서 내포된 결과일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한다. 당시에 예상외로 높은 서명 참여율을 놓고 그것이 과연 여성운동의 성과인지 단지 성폭력에 대한 도덕적 보수주의의 포장된 결과물인지를 구분할 수 없었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경험차를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여성들은 대부분 자신을 잠재적 피해자로 규정하기에 동일한 사건을 보아도 피해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남성들은 자신을 ‘비도덕적인' 가해자와 구분하고 선을 긋기 위해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활동가들과 대중들 사이에 간극이 커졌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2. 학칙 완성과 상담소 개설


1) 학내 상담소의 필요성 그리고 현재의 한계

우선 상담소가 있음으로 인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점을 생각해 보면 무엇보다도 ‘강제력’과 ‘전문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중징계사건이나 교수/교직원 관련 징계의 경우 그 실질적인 징계권한은 상담소가 아닌 각각의 징계위원회로 분산되어 있다는 한계는 뚜렷하다.

현재의 상담소는 재정이나 인력 상태 또한 현저히 열악하다. 단 1명의 상근자를 두고 유동적으로 구성되는 조사위원회가 모든 사건처리를 담당하기에는 무리일 수밖에 없다.

현재의 상담소는 서울대 학생생활연구소 산하의 기관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따라서 법적/재정적 독립성 또한 없다.

상담소는 가해자에 대한 재교육과 피해자 보호 및 치유를 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어야 함에 불구하고 그에 관련된 전문 상담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2) 상담소의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운영


Ⅴ. 이빨 빠진 학칙안과 상담소

상담소가 개소되고 반성폭력운동의 제도화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이 시점에서 학내여성운동단위는 나름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간 반성폭력운동이 워낙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도 있지만 제도화된 이후의 운동이란 항상 그렇듯 급진성을 상실하는 한계가 있다.

 상담소의 개소는 좋게 바라보자면 이제 더 이상 학내여성운동단위들이 성폭력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역량을 소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점과 강제력과 공신력을 가진 기구가 이를 처리해준다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학내운동이 담보해온 급진성을 상담소에서 온전히 수용할 수는 없다는 한계로 인해 불안함이 남게 되는 것이다.

학내 여성운동단위는 이제 좀 더 다른 방식의 반성폭력운동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과나 동아리 등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남성 중심적인 문화, 그것은 명백히 성폭력이지만 제도적인 과정으로 해결될 수 없는 영역이다.


Ⅵ. 더욱 급진적으로!!

서울대의 학칙제정운동은 꾸준히 학생사회의 지치적인 역량을 기반으로 하여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유의미하다. 그러나 역시 제도화는 제도화이다. 그리고 대학사회 구성원은 변한다.

그렇기에 상담소 역시 이제 독자적인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 동시에 대학여성운동은 이제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려도 좋을 것이다.

학칙제정운동의 마무리는 대학여성운동단위에게는 박탈인 동시에 기회인 셈이다. 성폭력사건을 판단하고 처리하는 기구로서의 역할은 이제쯤 그만 둘 시기가 되었다. 이제는 기회를 활용할 시간이라 생각한다.


2007/02/15 18:57 2007/02/1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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