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평화의 관점에서 본 여성에 대한 폭력 - 정희진
[발제문]
《성폭력을 다시 쓴다 - 객관성, 여성운동, 인권》
「인권과 평화의 관점에서 본 여성에 대한 폭력 - 정희진」
1. <Fucking USA> - 성별화된 민족 범주와 평화운동의 반(反)평화
2002년 주한 미군의 장갑차에 희생된 두 중학생을 추모하는 촛불 시위에서 열창되었던 노래<Fucking USA>와 고 윤금이 씨 사진 전시는 평화운동가를 포함한 한국 남성이 이 사건을 어떠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볼모로 한 반미, ‘평화’운동의 정치학이 남성에게는 평화를 위한 실천이 여성에게는 성폭력을 선동하는 폭력, 공포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비단 민족 모순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많은 집단간 갈등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매개로 진행된다는 사실은, 성폭력이 여성의 몸을 통해 남성간 정치를 실현하는 가부장제의 기본 구조라는 것을 말해준다. - <태극기를 꽂으며>, <토쿄타워투쟁>
성폭력은 여성 인권 침해로 인식된다기 보다는 가족, 국가 등 남성 중심적 집단간에 갈등이 있을 때 상대편 집단의 재생산 기능, 문화, 정체성을 파괴하는 ‘궁극적’ 승리의 쟁취 수단이자 그 결과라고 간주된다.
성별화된 사회에서 사람은 인간이기 전에 여성과 남성이어야 하며, 성별 관계의 불평등 논리에 의해 사회적 약자는 여성화된 호칭을 갖게 된다. - 서구/아시아, 미국/한국
남성과 남성의 갈등만이 정치라는 시각에서, 여성 억압은 독자적인 정치학이 아니라 여성을 소유한 국가간, 민족간, 남성간 갈등의 부산물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된다. 역사의 주체인 남성(장기수 ‘선생님’), 역사의 희생자인 여성(정신대 ‘할머니’)이라는 언설처럼 정치의 행위자는 언제나 남성으로 상정된다. 성별을 정치적 문제로 여성을 정치적 주체로 간주한다면, 정신대 여성은 희생자, ‘할머니’가 아니라 정치적 생존자이다. 또한 이때 그녀의 몸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앨리스 워커가 말한 대로 ‘전사의 징표’가 된다.
다시 돌아와 <Fucking USA>의 담론은 그 ‘보호’가 한국 남성이 한국 여성을 직접 보호함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한국 남성이 미국 여성을 강간함으로써 가능하다는 논리다. 이러한 논리는 여성의 몸을 대상화, 수단화한다는 점에서 여성 인권침해이기도 하지만, 여성을 끊임없이 타자로 만드는 이러한 남성 중심적 민족주의로는 실상 매국에 제대로 저항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타자를 필요로 하는 주체는 온전한 주체일 수 없기 때문이다.
2. 성별화된 평화운동
모든 재현은 현실을 구성하는 담론의 일부이며 실천이기 때문에, 현실의 권력 관계를 반영한다. 기지촌의 여성이 잔인하게 살해된 주검 사진은 반미 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해 전시된 것이 아니라, 그녀가 힘없는 매춘 여성이었기 때문에 전시되는 것이다. 즉 사회적 약자의 피해를 그 개인의 인권이 아니라 민족적 분노를 촉발시키는 수단으로서 동원하는 것이다. ‘민족이 우선인가, 여성이 우선인가’라고 묻지만 ‘민족’의 이익이 우선인가, ‘남성’의 이익이 우선인가라는 질문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의 평화운동은 일상적 성별 질서에 의존하고 있는데 첫 번째로서는 젠더를 다른 사회적 모순의 하부 구조, 영향을 ‘받는’ 구조로만 상정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전쟁 반대 논리로 동원하여 성별 분업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것이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내용의 성별화된 이미지 때문에, 여성은 고통이나 폭력을 당했을 때 남성보다 훨씬 더 많이 참을 것이 기대되고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은 비난받는다.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것은 ‘집안 일’이고 때리다가 아내가 숨지면 ‘과실치사’가 되지만, 아내가 폭력 남편을 살해하는 것은 확실한 ‘살인’이 되는 것이다.
평화와 전쟁에 대한 성별화된 이미지를 문제제기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현재 한국의 평화운동은, 여성에게는 폭력구조의 일부가 될 수 있다.
3. 성폭력 개념을 둘러싼 성별 권력 관계
여성에 대한 폭력은 가부장제의 역사와 같다. 가부장제 사회의 성문화의 특징 중 하나는 남성 성기 중심성으로, 성폭력 개념 역시 남성 성기 중심적으로 정의된다. 그래서 현재 한국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성폭력 개념은 강간 등 성적인 폭력에 한정되어 있다.
인식자의 사회적 위치와 이를 둘러싼 정치적 조건에 따라 각기 다르게 정의되는 성폭력 개념 중에서 누구의 경험이 ‘객관적’인 성폭력 개념으로 선택되는가와 이러한 선택의 원리에 개입된 권력 관계는 정치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 이대 축제 난동 사건, 부천서 성고문
가부장제 사회는 ‘가임 가능한 부녀’만을 ‘여성’으로 보는데, 성폭력은 여성 개인의 인권을 침범하는 범죄가 아니라 ‘가임 가능한 부녀’를 개별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남성의 권리에 대한 침해 - 사유재산권 침해 - 가 된다.
4. 여성에 대한 폭력과 여성 인권
여성문제(gender issues)는 기존의 시각에서는 비가시화된 문제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여성의 피해를 비가시화시키는 남성의 논리를 비판, 해체해야 할 것이다.
남성의 언어로는 여성의 경험을 읽을 수가 없는데,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남성의 언어가 아니라 여성의 경험이 되는 것이다. 남성 사회는 여성의 경험을 남성의 논리에 맞도록 환원하거나 아예 여성의 경험 자체를 없는 것으로 만들어 여성의 인식을 예민함과 정신 착란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또한 섹슈얼리티 문제는 법 제정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관련법이 없어서 처벌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남성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시각과 의지가 없어서 처벌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한 여성운동이 법 제정 중심으로 수렴될 때, 성폭력 근절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비가시화된 사회적 문제를 법제화할 때 법은 가장 대중적인 인식을 반영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여성폭력 관련법은 언제나 제정되자마자 개정운동을 시작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여아 낙태는 여아의 생명권과 어머니 여성의 건강권에 대한 염려를 중심으로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성비 불균형으로 ‘남자들이 장가를 못 간다’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정신대 문제는 피해여성의 인권이 아니라 민족의 수치를 중심으로만 논의된다. ‘남편의 폭력으로 평화로운 가정이 깨져서 문제’라기보다 ‘죽음에 가까운 폭력으로도 남성 중심적 가정이 안 깨지는’ 현실이 문제이며, 바로 이것이 가정폭력이 조절되지 않는 실질적인 이유이다.
여성폭력이 인권 문제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기본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불가피하다. 국가주의, 민족주의, 가족주의 등 여성 섹슈얼리티의 통제를 통해 유지되는 남성 중심의 공동체 질서가 강한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는 것은 곧 공동체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되어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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