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시대 안 '나'

요즘은 그런 생각을 자주하게 됩니다.
20세기가 권력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욕망의 시대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20세기가 이념의 대립, 그에 대한 힘의 분배로서 많은 것을 보려 하였다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욕망이라는 코드로 더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20세기에 개개인이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현재에도 권력이라든지, 이념이라든지 이러한 것들이 사라진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회의 주요한 코드가 무엇인지에 따라 보는 시각도 달라지겠지요.
예전에 누군가가 저에게 어떠한 사회가 좋은 사회이냐, 혹은 어떠한 사회가 옳은 사회이냐라고 물었다면
저는 아마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부의 불평등이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 사회의 모순들이 모순이 아닌 사회'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누군가가 저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저는 아마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욕망이 균등하게 기획되는 사회' 라고 말입니다.
돈을 좋아하는 것도, 신을 믿는 것도 그리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으로 다른 사람들의 욕망을 앗아가 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누군가는 저에게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이야기하는 욕망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이러한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네요.
'글쎄요. 욕망이라는 것을 굳이 어떠어떠한 욕망이라고 구별해서 생각해야 되나요?
아. 그래야 될지도 모르겠군요.
그래야 욕망이 실현될 수 있는 기회가 한쪽으로 몰리지 않을 수 있게 기획할 수 있으니 말이에요.'
모든 사람들의 욕망이 실현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는 행위가 다른 사람의 욕망을 짓누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어떠한 기획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을 조정할, 관리가 아닌 조화될 수 있게 해 줄 기획을 말입니다.
20세기에 발현된 사회주의는 - 그것이 잘못 이해되었든, 그렇지 않든 -
경제력, 경제행위의 평등을 이야기하였습니다.
현재의 자본주의는 생산성 향상등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장미빛 미래를 보여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 안에 나의 행복이 배치되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나의 욕망은 단순히 '돈의 액수'안에 자리잡혀 있는 듯 보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행복에 대해서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지금, 내가 아무런 제약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결과에 상관없이 할 수 있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고 말입니다.'
21세기, 많은 사람들이 욕망을 이야기하는 것에는
그 안에 자기 자신이 투영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요?
많은 이념과 권력 앞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어려웠다면,
욕망은 너무나 단순하게 내 안에 자리잡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아직 더 발전해야 된다는, 아직 더 가질게 많다는 사람들에게
저는 아직 더 행복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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