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사랑의 이해 2 - 타자성

루만 : "사랑하는 자의 '행위'가 사랑 받는 자의 '체험'에 접속되는 것'
- 행위와 체험
행위란 신체로부터의 거리가 1인 대상에 대한 지시(지향)만을 수반하는 (신체적인) 수행.
체험이란 신체로부터의 거리가 1을 넘는 대상에 대한 지시(지향)를 수반하는 수행.
쉽게 말해서,
행위라는 것은 '나'라는 자각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행위를 지시하는 대상도, 행하는 대상도 '나'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체험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우리가 흔히 체험했다고 하는 것은 외부로부터의 자극, 영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위의 정의에서 말한 '1'의 거리감에 대해서 이해하셨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정의를 기반으로 루만은 사랑에 대해
"사랑하는 자의 '행위'가 사랑 받는 자의 '체험'에 접속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 타자성의 체험
원래 행위라는 것은 위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지시하는 대상도, 행하는 대상도 '내'가 됩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행위에서는 이것이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내가 '사랑'이라는 행위를 함으로서 타인은 '사랑'이라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동시에 행위를 지시하는 대상인 나는 타인의 체험이 신경쓰입니다.
타인이 나의 행위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머릿속에서 맴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위는 본래 '내'가 지시하는 것이지만,
'타인의 체험'에 영향을 받게, 심하게는 종속받게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함에 있어서 그 사람이 이렇게 하면 좋아할까 고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행위가 더이상 나에게 종속되는 것이 아닌 서로에 대한 행위가 되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이라는 행위는 그렇기에 타자를 느끼는 체험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원래 행위라는 것이 내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되는 것인데 - 지시도, 행위도 -
그것이 나를 벗어났으므로 거부감, 불안함을 느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가 저사람에게 왜 그리 신경을 쓸까, 내가 저사람을 좋아하는 걸까, 아닐거야' 하는 불안감과 의문은
이에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 유일함의 집착
우리는 흔히 (진정한) 사랑을 이야기할 때 대체되지 않는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서 A라는 사람이 B와 사랑할 때,
A는 C,D,E,F도 아닌 B만을 사랑한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A는 고민합니다. B가 아니였으면 어떻게 됐을까.
동시에 B도 고민을 합니다. A가 나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면 어쩌지.
이러한 유일함에 대한 고민은 위에서 이야기한 사랑의 행위, 체험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행위는 나라는 고유한 것의 문이 열리면서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행위의 준거점이 나에게서 타인에게로 넘어가는 - 타인의 만족감에 종속되는 -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사랑의 유일함에 대한 고민은 애초 자신의 고유함에 대한 자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행위를 지시하는, 행위하는 '나'라는 고유한 존재의 자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랑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나는 고유하지 않다는 것이 - 행위의 준거점이 떠나갔다는 것 - 드러나지만,
애초 행위는 나의 고유함에서 시작한 행위이다. '나'이기 때문에 그렇게 행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랑에서는 나의 단일성이 그 부정과 공존한다"
이러한 나의 단일성과 부정의 혼란 - 현기증이 나에게 혹은 상대방에서 투영되는 것이지요.
내가 단일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고민이 그대로
상대방은 단일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로 전이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사랑에서 자신을 잃어버릴가 고민하는 많은 연인들.
그들이 고민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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