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빈곤의 구조적 요인과 빈곤의 여성화 - 김혜영, 이은주, 윤홍식
[발제문]
《여성빈곤의 구조적 요인과 빈곤의 여성화 - 가족, 노동시장, 복지정책에 관한 여성주의적 재고
- 김혜영, 이은주, 윤홍식》
Ⅰ. 머리말
경제위기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빈곤여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각되고 있다. 이는 경제위기로 인한 대량실업사태와 함께 가족구조의 급속한 변화로 전통적인 남성생계부양자의 위상이 흔들리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들이 증가되었기 때문이다. 빈곤여성의 문제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남성 중심적 가족구조 속에서 여성의 빈곤은 가족의 대표자이자 부양자인 남성빈곤의 파생적 결과로 이해되거나 사별과 같은 부득이한 이유로 남성이 부재한 일부 여성들의 문제로 치부되어 왔다.
그러나 파스칼의 지적처럼, 가족가치관의 변화로 여성이 가구를 대표하거나 가족을 부양하는 경우가 급증하면서 빈곤가구 개념에 함몰되어 표면화되지 않았던 여성빈곤이 비로소 가시화되고 있다.
여성고용의 불안정한 지위는 노동시장에서의 기여도를 근간으로 하는 현재의 복지제도에서 여성을 불리한 위치에 놓을 뿐,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받는 차별을 보상해주거나 보완하지 못하고 있다. 복지 인프라로 도입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여성의 특성이 고려되지 않음으로써 빈곤여성들은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거나 한시적인 생활보호사업과 같은 응급 지원의 주된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여성의 일할 권리를 보장하고 근로능력의 향상을 통한 고용창출이나 직업훈련과 같은 적극적인 노동시장 대책과 연계되지 못한채 여성들을 기초생활보장의 주요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비효율성은 결과적으로 빈곤인구에서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는 ‘빈곤의 여성화’ 현상을 가중시키고 있다.
Ⅱ. 연구의 배경과 관점
1. 선행연구의 검토
90년대 초까지 빈곤여성의 연구경향은 저소득계층 여성의 빈곤실태를 살펴보고 대책을 제안하는 실태연구가 주류를 이루어왔다. 다음으로는 계급론적 시각에서 빈곤여성의 문제를 다루는 연구가 있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제기된 한국사회의 불평등구조에 대한 관심과 함께 80년대 중분 이후 도시빈민연구가 진행되면서 도시빈곤가족과 여성의 문제가 논의되었던 것이다. 끝으로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하여 빈곤문제를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접근함으로써 빈곤여성에 대한 관심이 빈곤한 여성으로부터 여성의 빈곤으로 전환하는 90년대 중반이후의 구조적 접근방식을 꼽을 수 있다.
이같은 여성빈곤에 관한 논의들은 경험적 분석을 통해 빈곤문제가 여성화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성별과 학력, 연령, 가구형태, 그리고 이들의 고용상태, 임금수준, 주거상황등이 갖는 설명효과를 측정함으로써 빈곤의 다양한 요인을 경험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경험적 분석에서 흔히 구조적 변수로 간주되는 취업여부, 노동시장 지위와 임금수준은 결과적으로 왜 그러한 노동시장 지위와 임금을 받게 되는가의 사회적 맥락과는 상당부분 유리되어 하나의 변수로만 치리되고 있기 때문에 구조적 특성을 설명하기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2. 연구관점과 범위 : 빈곤여성, 여성빈곤, 그리고 빈곤의 여성화
최근에 와서 여성빈곤을 주목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빈곤인구에서 여성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 이외에도 여성 개인적 특성의 변화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문제의 심각성에 있다. 요컨대 여성빈곤은 여성의 인적자본의 특성보다는 사회구조가 여성을 규정하는 방식에 좌우되고 있기 때문에 인적자본 중심의 탈빈곤 정책의 효과성은 상당부분 재고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에는 남성부양자와 매개되지 않은 여성가구주들이 저소득으로 빈곤해지는 근본적인 요인을 노동시장, 가족구조, 그리고 국가의 관게에서 찾으려는 구조적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한편 ‘빈곤의 여성화’ 현상에 주목하고 구조적인 접근을 시도한 피어스는 여성빈곤의 구조적 요인으로서 직업의 게토화와 저임금구조와 같은 여성 차별적인 노동시장을 강조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은 단순히 여성과 남성의 임금격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 자체가 성분절화 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존연구에서 노동시장의 성차별과 함께 여성빈곤을 초래하는 또 다른 원인으로 지적되는 것은 사회보호에 있어도 여성을 주변적, 의존적 존재로 인식하는 복지제도의 가부장성이다.
이상에서 사회구조적 관점에서는 여성빈곤의 요인으로 가족구조와 노동시장, 혹은 국가의 복지정책을 언급하고 있다. 여성빈곤의 요인이 다양한 것이 사실이지만, 여성빈곤은 빈곤문제의 일부가 아니라 그 자체가 빈곤문제의 핵심이자 전통적 빈곤정책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 모순의 결과라는 점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각 구조 가운데 어떠한 구조적 특징이 여성의 빈곤을 좌우하는가를 논의하기보다는 가족, 노동시장, 복지정책의 특성을 동시적으로 고려함으로써 여성차별의 사회문화적 기조를 살펴보는 것이 타당하다.
Ⅲ. 가족구조의 변화와 여성빈곤 : 여성가구주의 증가와 성별분업
1. 가족의 구조변동과 여성가구주의 증가
가족의 근대적 변화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친족제도와 지역사회의 중요성이 해체되고 사적관계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개인의 정체성과 가치의 주된 영역으로 가족이 부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 역시 가족은 형태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가족변화는 무엇보다도 결혼율과 출산율의 저하, 출산의 연기와 이혼·재혼의 증가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여성의 취업욕구는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는 반면에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수용되는 방식은 여전히 모순적이다. 교육기회의 증가와 가족구조의 변화로 인해 여성들이 체감하는 취업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에서의 여성차별과 배제는 크게 변화되지 않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여성의 취업의식이나 인적자본의 특성과 같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경제의 구조적 모순, 즉 유교적 가부장제와 민주적 시장경제의 모순적 결합에 기인하는 것이다.
더욱이 남성과 달리 여성의 결혼지위는 노동시장에서 여성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한다. 이는 여성이 담당하는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저평가와 이로 인한 완전한 노동력을 시장에서 제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회통념에 기인하는 것이다.
2. 가족 내 성별분업과 여성의 노동권 제한
산업사회에서 여성들이 직면하게 된 노동문제의 대부분은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근대산업체제가 여성들이 수행하는 일 중 많은 부분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여성의 일에 대한 평가절하는 여성들이 수행하는 일 자체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그 일이 수행되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사회는 급속한 산업화 과정 속에서도 전통적인 가족주의와 가족규범, 불평등한 성별분업관계를 전제로 하는 가족 의존적이고 가족 희생적인 가족구성 원리를 유지해 왔다. 이러한 가부장적인 가족주의와 남성부양 가족체계는 여성빈곤과 관련되어 있다.
Ⅳ. 노동시장의 성분절 구조와 비정규직의 여성화
1. 성차별적 노동시장과 여성노동의 주변부화
90년 중반 이후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이 증가함에 따라 ‘노동력의 여성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여성노동자의 70%가 고용이 불안정한 임시직과 일용직 노동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들의 평균 근속년수는 2년 이하인 경우가 60%나 되는 것으로 나타나 여성들의 노동시장에서 불안정하게 통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노동의 비정규직화 현상은 여성노동을 저평가하는 가부장적 문화에 의해 더욱 강화되며, 성별 직종분리와 직무분리는 이를 뒷받침 해주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성별 분절화는 성별 임금격차를 초래하는 순환적 고리를 이룬다.
2. 기혼여성노동의 특성과 비정규직화
1980년 이후 여성노동력은 기혼, 고연령 여성의 경제활동참여가 크게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단순노무직, 서비스직이나 시장판매근로자에 집중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가사와 자녀양육으로 인한 경력 단절로 M자형 취업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성노동력의 69.5%를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여성 중에서도 나이가 많고, 학력이 낮을수록, 그리고 미혼여성보다는 기혼여성일수록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비중이 높은 것에서 불연속적인 취업형태가 잘 드러난다.
한국의 근대화과정에서 남성은 ‘공적 영역’, 여성은 ‘사적영역’으로 이분화 됨으로써 여성노동의 전반적인 가치하락을 가져온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자본축적 방식은 여성 내부의 차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여성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결혼 상태나 나이, 노동형태, 최근에는 외모에 따른 분화를 통해 노동의 유연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여성내부의 연령, 계층, 혼인상태와 같은 특성 가운데 ‘기혼’이라는 조건 자체는 능력과 무관하게 여성노동자의 ‘가치’와 노동‘영역’을 결정하는 주요한 기준임을 알 수 있다.
Ⅴ. 지연된 여성정책과 복지체계
1. 여성정책의 딜레마
모성보호 관련법, 자녀출산과 양육의 인식변화, 고용평등법 등으로 계속해서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려고 했지만 여성노동시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기에 전체 여성노동자의 고용조건을 개선하는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향후 여성노동의 문제는 전체여성의 대다수를 점하는 비정규직 노동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2. 복지체계와 여성의 배제
우리나라의 보장제도는 임금노동, 그것도 가능한 한 지속적인 취업노동에 기반 한 기여금 적립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장기간의 실업이나 보험혜택이 적용되지 않는 영세사업장의 취업자와 비정규직, 저임금직에 고용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불리하다. 즉 사적영영이나 공적영역에서 노동을 했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공적영역에서 기여금 납부와 액수에 비례하여 급부를 제공하는 사회보장제도의 기본적 속성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주변부의 위치를 점하는 빈곤 여성들은 시작부터 정책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여성가구주에게 제공되는 현재와 같은 공공부조 시스템은 여성을 배제하는 시장경제의 다양한 차별을 극복하고 이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적극적 노동연계 프로그램에 해당되는 자활사업의 경우 여성가구주의 참여비율은 매우 높은데, 이러한 자활사업은 여성의 전통적인 성역할 배치 전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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