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위하여
■ 책을 읽는다는 것
책을 읽는다는 것은 쉽게 이야기해서 책과 대화하는 것이다. 책과의 대화가 만족스러울 수도, 또한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책들은 독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아 대화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대화란 상호작용이다. 혼자서도 대화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흔히 대화라고 하면 둘 이상이 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따라서 똑같은 책을 읽었어도 그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서 대화는 달라진다. 같은 사람일지라도 시간이 흘러서, 혹은 경험이 많아져서 생각이 바뀌었을 경우 대화도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책의 저자는 한 명이라고 단정한다. 그 저자의 생각을 읽는 것이 책을 읽는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과연 책 안의 저자는 한 명 뿐일까? 그렇지 않다. 한 권의 책은 한 명의 저자가 표면적으로 존재하지만, 사실 무수히 많은 생각들의 합으로 책은 구성된 것이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들에 영향을 받으면서 그 책을 썼었을 테고 책 안의 많은 인용구들이나 생각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먼저 한 생각일 수도 있다.
따라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양한 독자들이 - 그것이 다양한 자신이든, 다양한 사람이든 - 다양한 저자들을 - 그것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든, 내용에서 드러나든 - 만나는 과정이다.
책은 글을 통해서 서로 간의 대화를 시도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언어를 통해서 대화가 시도된다. 그것은 언어가 될 수도 분위기, 표정과 같은 비언어가 될 수도 있다.
[노마디즘 - 이진경, 휴머니스트]
■ 우리 안의 파시즘1 - 언어 안의 파시즘
대화의 대상이 책이든, 한 명의 개인이든, 하나의 집단이든 상관없이 대한민국 사회는 대화에 대해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대화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나이의 높고 낮음, 학번의 높고 낮음, 기수의 높고 낮음, 학년의 높고 낮음, 직책의 높고 낮음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 대한민국의 어느 공간에 있더라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신이 미취학 아동일 때에는 쉴 새 없이 “너 몇 살이니?”라는 질문에 대답하여야 하며, - 우리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이 말을 묻지 않는다. - 초, 중, 고등학교를 들어가서는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지, 학년이 높은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신경을 써야 된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가장 자유롭다는 대학에 와서도 예외가 아니다. 여전히 “몇 학번이냐?”라는 물음에 대답하여야 하며, 학번과 나이로 얽힌 관계에서 대화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사회로 진출해서는 직책에 따라서 호칭에서부터 말 자체에 이르기까지 그 사람의 지위를 드러내는 수단으로서 사용된다. 사장님의 언어와 말단 사원의 언어는 다르다.
문제는 대화를 하는 것에 있어서 많은 요소들을 고려해야 된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너무나 명확한 권력 관계가 드러난다는 점에 있다. 나이가 많을수록, 학번이 높을수록, 직책이 높을수록, 학년이 높을수록 아랫사람들에게 말을 걸기가 쉬워진다. 말을 쉽게 할 수 있다는 것, 말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이 상대방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순간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는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언어 공화국이다. 언어나 호칭이 그 사람이 가진 권력을 드러낸다. 어린이에게 “너 몇 살이니?”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그 어린이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들이다. “너 몇 학년이냐?”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초6, 중, 고3학년생일 것이다. “너는 몇 학번이냐?,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학번이 높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일 것이다. “자넨 언제 들어왔나?”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높은 직책에 있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일 것이다.
이렇듯 한국 사회에서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는 그 사람의 권력을 드러낸다. 사실 그 권력은 나이, 직책, 학번 등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동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구조적 권력이다. 나이가 많은 것이, 학번이 높은 것이, 학년이 높은 것이, 직책이 높은 것이 권력이 되는 사회가 바로 지금의 한국 사회인 것이다.
그것들은 대부분, 모든 이들에게 동의 받지 못한 권력으로서 만약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이 대다수가 될지라도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폭력으로 작용한다. 굳이 말을 함에 있어서 내가 그들보다 나이가 많고, 학번이 높고, 피부색이 하얗고, 학년이 높고, 직책이 높음을 드러내야 하는 것일까? 나이를 떠나, 학번을 떠나, 인종을 떠나, 학년을 떠나, 직책을 떠나 자유롭게 대화할 수는 없는 것인가?
[우리안의 파시즘 - 임지현, 삼인]
■ 대학 사회내 Case by Case 의 함정
위에서 이야기되었던 것이 사회 내에서 높은 학번이나 높은 나이의 집단들이 그렇지 못한 개인이나 집단에게 가하는 폭력이었다면 이제는 그 안으로 더 들어가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대학사회 내에서는 학번과 나이가 서로 얽혀들면서, 동시에 위와 같은 문제에 대한 고민을 가지면서 - 나이와 학번에 따른 호칭에 대한 문제 -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점차 인식되었다.2 사실 이러한 문제의식도 ‘문제’로서 인식된 시기가 그리 길지 않다. 그러나 비록 일부이지만 대학사회 내에서 호칭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은 각각의 호칭이나 대화를 서로가 합의하여 구성하는 Case by Case 방식을 채택해서 사용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호칭이나 말 높임의 문제는 개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개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된다는 것이다. 상당히 진일보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과연 Case by Case라는 방식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일까?
서로에 대한 대화를 서로에게 맡긴다는 것은 어찌 보면 개인이 없는 한국 사회3에서 대단히 중요한 진일보일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대화에 대한 모든 문제를 끝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대학사회 내에서 서로가 서로에 대한 대화를 결정지으려고 할 때, 그 결정을 누가 쥐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누가 “우리 서로 말 놓을까”라고 이야기하며, 누가 “우리 서로 나이도 같은데 친하게 지내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것은 너무도 명확하다. 그 안의 집단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의해 결정권이 쥐여져 있는 것이다. 나이 많은 새내기가 “우리 말 놓아도 될까”라고 말하는 것이 현재 과연 자연스럽게 비추어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말을 놓는 것을 결정하는 것, 호칭을 어떻게 부를까를 결정하는 것, 편하게 지내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모두 기존의 학번, 나이권력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선택된다. 따라서 마치 집단이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을 개인 대 개인의 선택으로 바꾸어 놓았지만, 실상 그 안에서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여전히 그 안에서 학번, 나이에 따른 권력은 여전히 핵심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개개인의 문제로 치환해 놓고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뒤에 숨어있는 학번, 나이 권력의 작동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도전 - 정희진, 교양인]
■ 언어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위하여
어떻게 하면 사람들끼리 서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였다면 서로 간의 나이를 잘 묻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이가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었다면 굳이 흑인언어와 백인언어를 구별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회 안에는 한국인들만 잔뜩 살고 있기 때문이다.4
그 사회의 언어는 곧 그 사회의 권력 관계를 나타난다. 우리는 서로가 이야기하는데 피부색이 어떻던, 나이가 어떻던, 학번이 어떻던, 어느 지역에 사는 게 어떻던, 꼬마이든 어른이든 상관없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몇 살이세요?”, “몇 학번이세요?”라고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개개인을 알 수 있는 것들로 대화하여야 한다.
우리는 언제쯤 언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는 언제쯤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고 너무도 편하게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단순히 어느 순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를 재구성하려는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바로 지금 당신이 속한 당신의 공간에서부터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노력에 많은 사람들과 많은 책들이 당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과의 대화와 함께 책과도 대화하라.
- 파시즘은 일반적으로 대상을 불문하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적이며 폭압적인 모든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Back]
- 나이가 많지만 자신보다 학번이 낮다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나, 대학에 같이 들어왔지만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조기졸업 문제 등이 이에 속한다. 조기졸업은 1학년이지만 1학년으로 대우받지 못하거나, 자신은 이미 다른 학교에 다니다 와서 이미 대학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으나 그에 대해 학번이 낮다는 이유로 그 경험을 인정해 주지 않는 것 등의 문제가 존재한다. 이 밖에 학번과 나이에 대한 호칭문제는 대학 내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동시에 대학 내의 학생공동체에서는 학번과 나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동시에 말해준다. [Back]
- 한국 사회에서 개인이란 다음과 같은 물음들로 규정된다. “너 몇 살이니?”, “너 어느 학교 다니니?”, “다니는 회사가 어디야?” 등이다. 이것은 개개인을 규정하는 방식이 나이, 학벌, 대기업 등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나를 소개할 때 내가 가진 고유의 것으로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나이, 내가 속한 집단에 의해 나라는 것이 결정되는 것이다. [Back]
- 흑인과 백인에 대한 언어 차이가 없지만, 한국인들의 한민족이라는 환상은 외국의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박해를 가하는 구실로서 작용하고 있다.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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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퍼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