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첫사랑의 기억 - 초속 5센티미터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센티미터.
로켓이 지구를 빠져나가는 속도, 시속 5킬로미터.
내 마음속 그리움의 속도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10대의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은 한편의 영화로 재탄생된다.
바로 '초속 5센티미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초속 5센티미터는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이다.
동시에 주인공이 초등학교 첫사랑의 주인공과 헤어지는 순간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
어렸을 때의 사랑을 살포시 건드린다.
어린 날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많다.
그 사랑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미 그 주제는 너무나 많이 다루어져서
더이상 새로울 것도, 신선한 할 것도 없어보인다.
그러나 아직 그 안에서 더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내는 감독의 시선은 예리하기만 하다.
무엇이 이 애니메이션 영화를 기존의 영화들과 다르게 만들었을까.
단순히 실사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 영화라는 사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마 영화를 보는 내내 뒤통수를 맞은 기분일 것이다.
이 영화의 시점은 다른 영화와 사뭇 남다르다.
주인공이 초등학교때 첫사랑과 만나서 헤어지는 이야기,
그 사랑을 잊지 못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의 이야기,
그리고 회사원이 된 현재의 이야기가 시간의 연속적인 흐름없이 단절되어진다.
영화는 주인공의 성장을 연속적으로 다루지만,
세편의 분절된 시나리오로 관객과 마주한다.
밀란쿤데라의 '농담'에서처럼 각각의 장은 주인공의 시선으로, 주인공의 말로 채워지는 것이 아닌,
때로는 주인공, 때로는 제3자 - 그도 역시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 의 내레이션으로
영화는 채워진다.
첫번째 이야기는 '주인공'이 극적으로 헤어진 첫사랑의 대상을 만나고 다시 기약없는 이별을 하는 시간,
두번째 이야기는 그러한 주인공을 짝사랑하는 한 '여고생'의 가슴저린 짝사랑의 시간,
세번째 이야기는 '그들'이 서로 교차하고, 또 헤어지는 연속적이지만 분절된 시간을 그린다.
그러기에 그들은 모두 주인공이자, 모두 주인공이 아니다.
어느 한 사람에게 감정이입을 하여 극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떄로는 주인공의 시선에서, 때로는 제3자의 시선에서, 때로는 제3자도 아닌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인생의 모습이 비춰진다.
주인공과 그 안의 주변인물들, 그리고 극을 보는 나와의 일종의 거리감이 형성되는 것이다.
영화는 관객이 몰입에 들어가는 순간,
그 몰입을 끊듯, 다시 다른 사람의 입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러기에 이 이야기는 단순히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닌 본인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닌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의 이야기도 아닌, 동시에 모두의 이야기인 셈이다.
영화는 이렇게 10대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보편적인 시각으로 승화시키려 노력한다.
그것도 너무나, 너무나 아름다운 영상으로 관객의 눈앞에 놓여진다.
실사영화로는 재현하기 힘든 아름다운 영상과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환타지적 요소는 10대의 아름다운, 그러나 추억이 되어버린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때로는 환타지로, 때로는 너무도 아름답게 말이다.
그러나 곧 애니메이션적 환타지와 10대 첫사랑의 환타지에서 거리를 두는 듯
영화는 아름답지만 아름답게 끝나지 않는다.
다시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벚꽃이 내린다.
주인공은 우연히 예전 첫사랑의 감촉을 느끼며 재회하는 듯 하지만, 그들은 재회하지 못한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사랑 역시 끝나지 않았다.
영화는 끝났지만 끝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누군가를 만날 확률,
그것은 어찌보면 60억분의 1일 것이다.
그들이 다시 우연히 만날 확률, 그것은 확률로 이야기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의 인생은 확률이 아니다.
누군가는 다시 재회하기도 하며, 누군가는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가기도 하며, 누군가는 잊기도 한다.
그렇게 인생은 서로의 선을 그리며
때로는 교차하면서, 때로는 평행선을 달리기도 한다.
영화는 62분의 시간동안 인생을 이야기한다.
62분이 곧 인생인 셈이다.
벚꽃이 떨어지는 시간, 초속 5센티미터.
그것은 단순히 속도가 아니라 인생이 흘러가는 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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