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자치 규약에 대한 생각

벌써 오래전부터 대학에서 이야기되었던 '반성폭력 내규'는

어느새 '성평등 자치규약'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시작은 대학의 신입생을 중심으로, 단지 신입생뿐만이 아니라 재학생들에게까지

학내 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고조시키고자 만들어진 내규이자 규약이었습니다.



대학의 신입생들은 학교에 들어오게 됨과 동시에 기존과 다른 환경에 맞닿게 됩니다.

그리고 대학은 기존과 다른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자

많은 사람들과 부딪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혹은 신입생들과 함께 하는 수련회등에서는

함께 지내면서 지켜야 될 것들에 대해서 배우게 되고,

그 중에서 꼭 배우게 되는 것이 여/남이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가 지켜야 될 것들입니다.
(성을 여/남의 두가지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글의 느낌을 위하여 그렇게 사용함을 양해드립니다.)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성폭력 사건들이 발생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지식수준이 높다는 교수부터 가장 절친하게 지냈던 선배, 동기, 후배에 이르기까지

성폭력을 자행하는 사람들은 그 지위, 학력의 차이없이 두루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학 역시 성폭력에 있어서 안전한 공간이 결코 아닙니다.



새학기가 되어서 신입생들이 들어오게 되면

그들에게 학교생활의 길잡이(?)가 되기 위해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줍니다.
(사실 그들이 길잡이해주는 것에는 굳이 길잡이해주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안에서 '성평등 자치규약'이라는 것은 하나의 금지로서 작용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다양한 성들이 함께 공존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어떠어떠한 것은 하지 말아라 - 예를 들어서 '좆같다'라는 말을 쓰지 말아라 -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원치않는 접촉을 하지 말아라.

성적인 농담을 쉽게 던지지 말아라.

괜히 여자신입생들에게 추근거리지 말아라.

이러한 방식으로 '반성폭력 내규'는 이야기되어져 왔고 그렇게 이해되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성평등 자치규약'으로 이름이 변화하기는 하였지만

그 해석방식에 있어서는 별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 이러한 방식들은 상당부분 큰 효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단체로 이루어졌던 행위들이

- 예를 들어서 빨간 옷을 입고 온 사람에게 단체로 벗어라, 벗어라' 라고 외쳐대는 것들 -

이러한 반성폭력 내규와 동시에 사라져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오히려 내규는 놀이와 결합하여 조금이라도 성적인 이야기가 나오려고 하면

'내규, 내규' 하면서 외쳐대는 현상도 나타났었습니다.

'반성폭력 내규'와 같은 노력으로 인해서

표면적으로 일어나는 집단적인 성폭력이 없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그것으로 만족해야 되는 것인지 다시 한번 되물어야 되는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반성폭력 내규' 혹은 '성평등 자치규약'과 같은 내용들은

이제까지 어떠한 것에 대한 금지로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렇기에 그에 해당된 것에 대해서는 금지를 하는데 일조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성폭력 = 해당된 것에 대한 금지'라는 공식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금지하는 것만을 성폭력이라고 규정하고 이해하였기에

금지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성폭력이 아니다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농후했습니다.


'반성폭력 내규'든 '성평등 자치규약'이든 본질은

다양한 성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며 어떻게 하면 조화롭게 살 수 있을까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서

조인트 개강파티와 같은 경우는 '반성폭력 내규'에 없기 때문에 성폭력이 아니고

'벗어라' 라고 외치는 것은 '반성폭력 내규'에 존재하기 때문에 성폭력으로 생각된다면

이는 지금의 '반성폭력 내규'와 '성평등 자치규약'이 원하고 있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인트 개강파티의 경우,

실질적으로 그 대상을 남성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반의 구성원이 누구이냐라는 문제와 직결됩니다.
 
반의 행사는 반의 모든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열려있어야 함이 너무도 당연한 전제이지만,

본인이 다른 성이라는 이유로 반의 행사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은 성폭력입니다.
(물론 그것을 주체하는 사람들은 다른 성을 가졌다고 해서 참석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반행사의 참석여부를 성의 차이로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성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모든 구성원들을 전제로 하는 반행사에 국한 된 것이지 개인적인 취향으로 이루어지는 행사는 이러한 것들을 고려할 필요는 없겠지요.)


이는 기존의 '반성폭력 내규', '성평등 자치규약'이 해석되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표면적으로는 매우 평등하게 보였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금지로 이해되어왔던 내규 혹은 규악은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성평등 자치규약'은 그것의 내용이든 그것의 해석방법이든,

금지로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표면적으로서만 그렇게 비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규약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지향이자,

하나의 상호간의 노력이자,

내부에서부터 변화해야 될 것으로서 이해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매년 학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수의 성폭력은(강간, 언어적 성폭력, 환경적 성폭력등을 모두 포함한)

쉽게 근절되지 않을 것이며 쉽게 해결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성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단순히 오리엔테이션때 몇 분 듣는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평등은 하루면 가능하겠지요.

그것은 끊임없이 본인과 이야기해야 되는 주제이며,

또한 타인과 본인이 속한 사회와 대화해야 되는 주제이며,

본인이 어떠한 구조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이해해야 되는 주제이며,

위에서 이야기된 바와 그 밖의 것들도 부단히 노력해야 다가갈 수 있는 것임이 분명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성평등한 세상을 향해 가고 있겠지요.

만들어가고 있겠지요.

2007/01/27 00:02 2007/01/2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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