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가지 않은 길
-프로스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문득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이 시는 정말 수학능력시험을 공부하는 동안 많이 보았지만
그 때는 단순히 암기의 대상으로만 여겼기 때문에 흘려보냈던 시입니다.
그러나 지금 저에게 있어서 이 시는 매우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바로 '선택'이라는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문제와 맞닿드려져서 말이죠.
아직 24년이라는 시간밖에 살지 않았지만,
그동안 저의 인생에 있어서 선택의 순간은 많았습니다.
아니, 인생의 매 순간 순간이 선택의 순간인지도 모르겠군요.
다만 제가 기존의 것에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그것을 선택이라고 인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프로스트는 '가지않은 길'을 걸었지만
그리고 그는 그래도 두가지 길을 보고 있지만,
우리는 어쩌면 한가지 길밖에 못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좌절하거나 절망하면서 '나에게는 선택의 지점이 없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것은 선택의 지점이 없는게 아니라,
그 선택이 본인에게 있어서 최선일 것 같아서 선택한 것 뿐인데 말이죠.
2002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문제로 많은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모두가 군대를 하나의 선택의 문제로 보지 않고,
반드시 가야만 하는 곳으로 바라보았던 상황에서 그것은 하나의 충격이었습니다.
군대를 안갈 수 있다는, 거부할 수 있다는,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었던
하나의 선택의 문제를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었죠.
사실 안갈 수도 있는 것이었는데,
그러한 선택으로 인해서 피해가 막심하게 돌아올 것을 알기에
아예 선택의 문제에서 배제해 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많은 선택의 순간들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10개가 있는 것과 3개가 있는 것은 많은 차이가 납니다.
비록 두 경우 모두 같은 선택을 하였더라도 말이죠.
위의 경우도 자신이 군대를 가더라도,
병역거부를 하나의 선택지점으로 고려했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많은 차이가 납니다.
자신에게 처해진 상황이 달라졌을 때,
그것에 대해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종종 티비에서 비춰지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인생의 코스를 밟는 사람들은
- 예를 들어서 40세에 대학에 들어가거나 대기업을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하는 사람들등 -
자신에게 있어서 선택지점을 계속해서 넓혀왔던 사람들이었고,
남들이 보지 못했던 선택들을 선택한 것입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본인에게 있어서
얼마나 많은 선택의 지점이 존재하느냐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택의 지점들은 원래부터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연한 것에 있어서는 그것이 선택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오늘 내가 점심을 무엇을 먹느냐, 또는 집에 갈 때 버스를 타느냐 지하철을 타느냐와
같은 문제는 처음에는 선택의 문제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계속해서 똑같은 행위들을 반복하게 된다면
어느새 본인의 기억속에는 선택의 문제로 자리잡지 않게 되어버립니다.
그것은 하나의 너무나 일상적인,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죠.
그것은 개인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굳이 한국인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하나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한국어를 오랫동안 써왔다는 이유로,
또는
내가 이 곳에서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그것에 대해서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프로스트의 '가지않은 길'의 마지막 구절에서 보듯이
다른 길로 가는 것은, 그것은
기존과는 많이 다른 환경들, 행동들이 취해질 것이고,
또한 그러한 행동들을 요구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선택을 더 갖는다는 것은,
자신에게 좀 더 많은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과 같습니다.
길을 알고 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시도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길은 다른 세계로 인도하기 때문에
다른 세계에 진입할 수 있는
하나의 문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이니까 말이죠.
조선시대의 신분제 사회 속에서도,
다른 선택을 꿈꿔왔던, 그리고 일부는 그것을 실천으로 옮겼던 노비들처럼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너무나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그 자체를 고민하고 선택으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가장 익숙한 것이 가장 위험하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사회를 살아오는 과정이 점점 본인의 선택지점을 좁혀왔던 과정이었다면,
지금부터는 그 선택의 길을 넓혀가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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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병역거부-저도 여기에 대해 참 할말이 많았는데ㅋ 비록 군대를 갔다왔지만 양심적병역거부는 당연히 보장되어야할 권리라 생각해요. 더욱이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만든 군대인데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보아요. 오히려 저는 군대가 힘들어서 가기는 싫은데 빼지는 못하고 그래서 머리써서 이리저리 편한데로 빠지려는 사람들이 싫습니다. 빠지는 것은 상관없는데 그런곳에 생활하면서도 매일 다른곳에서 고생하는 다른병사들처럼 자기도 힘들다고 불평하고.나중에 나와서는 편한데 나왔으면서 힘든곳 나왔다고, 여자도 군대보내야한다고-_- 그러는 어처구니 없는 소리 들으면 때리고 싶어져요;;
ㅋㅋㅋㅋㅋㅋ
나중에 그런 사람 만나면 함 때려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하나의 시민운동이지. 너말대로 말이야.ㅋ
정말 몇 년전만해도 한국사회의 초절정 이슈였는데.
이거 머 군대얘기만 나오면,
자유롭게 이야기를 못하겠어.ㅠ
수많은 예비역들 달려들고,
문제가 문제로 읽혀지는게 아니라
어느새 군대얘기로 빠져버리는 걸 너무 많이 봤어.ㅎㅎㅎ
이글루 이오공감에서 에타님 블로그에 침략(...)했다가,
구석 어딘가의 멋진 덧글에 반해서(..응?)
여기까지 실례를 무릅쓰로 쳐들어오게 된 시즈입니다.(꾸벅)
저도 선택이라는 것에 대해 나름 생각을 해왔었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각도로 선택을 조명하셨군요.
하나를 선택함은 반드시 다른 하나를 버리게 된다는 생각에
선택을 두려워하고, 삶 속에 만나는 갈림길들을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봐왔던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뭔가 깊이 배우고 돌아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와~ 감동입니다.ㅠ
블로그를 만들면서 언젠가는 서로가 서로를 타고
연결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ㅠ
감사합니다.ㅋ
저도 에타님 블로그를 타고 들어왔습니다.(ㅋㅋㅋㅋ;; )
글이 깔끔해요.(의도하신대로)
잘 정리된 글 읽으니까 기분 좋아요.
하하하 즐겨찾기에 추가 했으니 종종 들르겠습니다. : )
ㅋㅋㅋ 이거 인기좋은 에타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주는걸~^^
사실 요즘에 쓰는 글들이 다소 산만해졌었는데,
너의 글을 보고 뜨끔했다.ㅎㅎ;;
앞으로는 긴장감 있게 글을 써야겠네~
자주 들려줘! ㅋㅋ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