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에 대한 인식

본인이 본인에 대해서 평을 한다면 어떨까요?
아니면 남들이 본인에 대해서 평을 한다면 어떨까요?
실제로 몇몇 항목에 대해서 평가를 해본 결과,
본인이 본인을 평가했던 것이 타인이 본인에 대해서 평가했던 것보다 높게 평가했다고 하네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것을 인정이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본인이 본인을 판단하는 것이 본인에 더 가까울까요?
아니면 타인이 본인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이 본인에 더 가까운 것일까요?
무엇이 본인의 모습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남들이 본인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
그들은 본인을 잘 모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눈으로 보고 싶은 부분만을 보기 때문에 잘 모른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은 이렇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남들이 보는 것과 같을수도 다를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자신을 진정한 자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기자신이라는 것은 하나로 존재하고 그것은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본인에 의해
가장 잘 파악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기에 '남들은 나를 잘 몰라.'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이겠지요.
이러한 생각에는
본인이라는 것은 하나로 존재하는 것이고
그에 대한 해석들은 그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생각하는 나는 '참으로 솔직한 사람'인데
남들이 그렇게 생각해주지 않을 때 남들은 나를 잘못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실제'의 나를 보여주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직' 나를 다 보여주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나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고
남들은 나의 실체에 대해서 모를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나'라는 것이 순수하게 존재하고
그것을 내가 판단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판단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나에 대한 생각의 차이는 해석의 차이이며
궁극적으로는 '나'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말 '나'라는 것이 하나로 존재하는 것일까요?
혹시 '나'라는 것은 너무도 많은 '나' 자신의 조합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서
내가 보는 나도 '나'이고, 타인이 보는 나 역시 하나의 '나'라는 것입니다.
100명이 나를 보았을 때 100명의 '나'가 있다는 것입니다.
소설책 속에 나타나는 작가도 하나의 모습이고,
그 작가가 소설책 밖에서 생활하는 모습도 하나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의 '나'가 아니라
너무나 많은 '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입니다.
어떠한 힘든 일을 겪고 나서 혹은 굳은 결심에 의해서
사람이 한순간에 변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과연 그 변한 사람은 변하기 전과 같은 사람일까요?
모든 것이 달라졌는데 기존과 같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초등학교때 나와 만났던 사람이 기억하는 '나'와
중학교때 나와 만났던 사람이 기억하는 '나'와
현재 나와 만나고 있는 사람이 생각하는 '나'는 과연 같은 사람일까요?
지금의 내 모습이 정확한 '나'이고
이전 기억 속의 '나'는 내가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나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예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예전에 타인에게 비쳐지던 나도, 지금 타인에게 비쳐지는 나도,
A라는 사람이 바라보는 나도, B라는 사람이 바라보는 나도 '나'라는 것입니다.
10개의 '나'가 있을 수 있고, 100개의 '나'가 있을 수 있고,
심지어 셀수없을 만큼 '나'가 있을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나'를 어떻게 해석했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셀수 없이 많은 '나'가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대한 물음입니다.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와 어떠한 것이 '나'인지를 물었었습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면
둘 다 '나'라는 것입니다.
잘못이해했다고 생각했던 것도 하나의 '나'로 존재하는 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나' 역시 하나의 '나'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누구이죠?
10개의 내가, 100개의 내가, 셀수없이 많은 내가 존재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으니 말입니다.
'나'라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나'입니다.
내가 누구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외부의 환경과 만났을 때 어떠한 내가 드러나느냐의 문제입니다.
누구와 만났을 때에는 10번째 내가 드러날 수도 있는 것이고,
소설을 쓸 때, 혹은 글을 쓸 때 298번째 내가 드러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어떠한 외부와 만나게 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따라서
내가 누구인지 고민하는 것보다,
나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어떠한 생각을 하느냐에 치중하는 것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역시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와 만나고 있는 당신도 하나의 당신이듯이,
나 역시 또다른 나로 당신과 만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다시 만날 때 기존의 나의 모습으로 당신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달라진 나로 당신과 만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창조하려는 노력, 그 노력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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