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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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예전의 요코이야기의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보편성에 대한 언급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자 합니다.
(http://hyuk.co.kr/entry/요코이야기-민족주의-역사관등-다양한-문제들이-얽혀있는-사건)


세상을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는 많았습니다.

하나의 보편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해석하려는 시도는 계급, 젠더등으로 나타났습니다.

누군가는 세상의 작동원리를 계급을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어디에나 만연해 있는 가부장적인 사회를 설명하기 위하여 젠더를 이야기하였습니다.

하나의 보편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보편성은 '추상화'를 통해서 이루어 집니다.

현실사회 안에서 '선택'된 여러 모습들을 보면서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 추상화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이라고 말을 할 때, 이미 이 말은 추상화를 통해서 이루어진 말입니다.

'인간'이라는 단어는 개별자 하나하나를 지시하지 않으며,

개별자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될 수 있는 것들을 추상화한 단어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단어도 어떠한 것이 '선택'되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예전의, 그리고 지금의 백인사회는 인간이라는 단어 안에 흑인들을 집어넣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인간이라는 것은 서구의 백인들을 일컫는 말이며,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어떠한 것을 '선택'하여 추상하느냐에 따라

단어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계급이라든지, 젠더 역시 이와 유사합니다.

계급이라는 단어, 그리고 젠더라는 단어는 이미 인간이라는 단어만큼이나

보편적으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좁은 사회 안에서만 추상화된 단어가 아니라 - 예를 들어서 한(恨) -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보편적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 것 - 예를 들어서 즐거움 - 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기에 세상의 모든 것을 계급이라는 말로, 젠더라는 말로 해석하려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회적 현상을 계급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모든 사회적 현상을 젠더의 차이, 갈등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이야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정말 유의미합니다.

대다수의 여성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일일히 한명, 한명 언급하지 않아도

젠더의 차이에 의한 폭력을 받고 있다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저임금에 시달리기에 삶의 위협을 받고 있는 빈곤층, 장애인, 사회의 극빈자들에 대해서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계급차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회적 운동들은 계급을 이야기하거나 젠더를 이야기합니다.

적(敵)과 아(我)를 명확하게 구별해 주기에,

저들이 우리를 착취하고 있다, 저들이 우리에게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저들은 기득권층이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모습에서 한국사회에도 이른바 '포스트 모더니즘'의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용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매우 달라지기 쉬운 것이

현재의 한국에서의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하나의 보편적인 법칙 - 계급이나 젠더 - 으로 세상을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여성문제라면 흑인여성도, 백인여성도 있고, 아시아 여성, 유럽여성, 아프리카 여성도 있는데

그것을 단순히 하나로 묶어서 여성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위의 보편성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된 포스트 모더니즘은

그동안 보편성 안에서 이야기할 수 없었던 미시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계급이나 젠더에 묶여서 이야기할 수 없었던

같은 계급내에서의 차이, 젠더안에서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포스트 모더니즘은 단순히 기존의 계급적 이해나 젠더적 이해를

개별자로 절단한 것에 지나지 않았고 그 열풍은 얼마되지 않아서 사그러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의 긴장상태를 이야기하며

두개가 마치 대립되는 것처럼 비추어져 왔습니다.

 
사실 하지만 이 말은 마치 보편적으로 묶을 수 없는 것들을 특수한 것이라고 이야기함으로서

하나의 사실(그들이 특수성이라고 이야기하는)을 보편적이라는 것의 그늘에 가리려는 모습입니다.

보편적이라 함은 어느 곳에서나 발견될 수 있는 하나의 속성으로

모든 세계를 감싸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식의 한계로 말마암아 보편적으로 묶일 수 없는 것들에

'특수성'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서 보편적이라는 말이 갖는 뜻을

무리없이 이어나가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보편성(계급이나 젠더)도 특수성(미시사, 개별사)도 사실 그렇게 불리워야 되는 것이 아니라,

- 그 말에 담겨져 있는 정치적 함의,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

다른 용어로서 다시 불리워야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땅히 생각나는 용어는 없습니다.)

계급이나 젠더를 보편성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사실 그것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들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아니라는 것,

미시사나 개별사를 특수성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사실 그것이 왜 특수해야 되는지, 그것은 이미 현실안에 존재하는 것
이라는 것에서

이해를 다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계급이나 젠더도 포스트모더니즘도 모두 사회의 현실을 드러내기 위한 설명인 것이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장점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것을 기존의 보편사와 특수사처럼 대립하는 것, 긴장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에 어떠한 것이 드러나는 것이 좋은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대립상태가 아니라, 상보적입니다.


따라서 보편사냐, 특수사냐를 선택할 필요가 없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냐 입장주의냐를 선택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어떠한 것을 조금 더 잘 드러내느냐의 차이입니다.

그것은 차이이지, 근원적인 해답이 아닙니다.



덧붙여서

기존의 운동성을 강조함으로서 포스트 모더니즘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사실 그것은 아직 그 이론에 맞는 운동이 발전되지 않음의 문제이지,

단순히 정치력, 운동력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성폭력 피해 경험 말하기 대회는 그것이 한명, 한명의 개별자들이 행하는 행위이지만,

그 안의 성폭력 피해생존여성에게는 얼마나 힘이 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힘을 주는 운동, 그것도 좋은 운동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2007/03/16 18:00 2007/03/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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