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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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의해서 변화되든지, 조직에 의해서 변화되든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변화되든지

변화는 폭력을 동반합니다.


외부의 요인으로 인해서 자기자신 내부의 것을 바꾸어야 한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법이 바뀜으로서 기존까지 몸에 배어왔던 것들을 변화시켜야 한다면

그것은 개인에게 많은 노력과 고통을 요합니다.

어떤 노인이 급격하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적응하려고 한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그러기에 많은 노인들이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회의 주변부로 물러서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에 체현되어 있는 기간이 길수록
(어린이들이 적응이 빠른 이유는 자신에게 부여되는 것들이 몸에 머문 시간들이 짧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예를 들어 한국인으로 오래 살았던 사람일수록 몸에 밴 한국인의 습속을 버리기 쉽지 않습니다.)


변화는 더욱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기에 그 노력이 강요되었을 경우 개인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변화에 동참할 것인지, 아니면 변화에 도태될 것인지 말입니다.


굳이 나이드신 어른들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미 20대의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이 확고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왠만큼 사회에 진출할 정도의 나이가 되면 자신의 생각을 잘 바꾸지 않는다고 할까요?

이미 자신의 몸에 체현된 것들을 떼어내기가 힘들어진 것이지요.

따라서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인 동시에

상대방에게는 폭력으로 다가설 수 있습니다.



무엇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그것이 상대방에게 폭력일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합니다.

더 확실히 말해서는 누군가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폭력입니다.

다만 그것이 그 사람 자신이 기꺼이 받아들이는 폭력인지, 아닌지의 차이로 결정되겠지만 말입니다.
(성적으로 마조히즘이 기꺼이 받아들이는 폭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그 용어는 이 경우 단순히 성적인 용어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용어로까지 확장시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는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폭력입니다.

그러기에 무언가를 변화시키고자 생각하는 것은 그리 낭만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이며, 누군가를 변화에서 도태시킬 수 있는 행위입니다.

변화를 단순히 낭만적으로, 서로 손을 잡고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변화속의 폭력으로 인해서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무언가를 변화시키기 원한다면 그 안의 폭력성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여지는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가하는 그 폭력이

그 사람으로 인하여 어떻게 하면 기꺼이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변화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것은 폭력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변화의 가능성을 긍정하느냐고요?


물론이지요!!

2007/05/03 11:25 2007/05/0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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