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와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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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PR을 외치던 시기도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까마득해 졌습니다.

그동안 자기 주장, 말하기 등이 중시되었고

이제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말하기는 기본적으로 청자의 존재를 전제합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말하기가 아니게 될 것 입니다.

그리고 언어학자들이 이야기했듯이,

모든 발언들은 명령어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듯이

말하기는 의사전달, 정보전달, '설득'을 목표로 합니다.
(언어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되었던 발화의 궁극적인 목표, 정보전달 vs 설득은 제가 파악하고 있는 지식이 별로 없기에 다루지 않습니다.)


문제는 말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만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자기 PR의 시대를 넘어,

말하기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화자의 역할만을 하려고 할 뿐이지, 청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만히 듣고만 있으면 바보 취급을 당하기도 하는 상황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모두가 말하기만을 한다면,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사회적인 권력관계에 따라서 발언권이 제한됩니다.

회사라는 조직 내에서는 직급에 따라서 발언권이 주어질 것이고,

사회의 경우에는 나이, 혹은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 발언권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말하기는 경쟁이라는 요소를 알게 모르게 포함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에 비해 듣기는 말하기와는 다른 의미를 함축합니다.

말하기가 경쟁, 설득이라는 가치들을 포함하고 있다면,

듣기는 이해, 포용이라는 가치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경쟁사회에서 부차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말하기에 비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

공적 영역보다는 사적 영역에서 중요시 되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듣기보다 말하기가 중요시 여겨지는 사회.

말하는 사람만 있다면 아마도 이 사회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말하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듣기가 전해주는 많은 가치들

역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높게 평가되어야 합니다.


현대의 많은 학생, 사회인, 노인들까지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상담을 받고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듣기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경쟁과 이해.

설득과 포용.

어느 가치가 더 중요한지를 논하기는 어렵지만

이해와 포용이 경쟁과 설득의 그늘에 가려진 사회가 아닌,

당당히 그늘에서 벗어나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희망해 봅니다.

2008/04/21 00:16 2008/04/21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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