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 새로운 세대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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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급변했던 시기는

작가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물어다 줍니다.


한국전쟁, 암흑의 70년대, 80년 광주사태와 87년 6월, 그리고 이어진 민주화.

한국사회는 짧은 시간,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작가들에 의해 좋은 작품으로 재탄생하곤 합니다.

비단 한국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재 한국에 소개되어 있는 일본소설의 작가들 대부분도

일본의 사회 격동기를 거친 작가들이 다수일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회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지식인들의 고뇌를 그릴 수도 있고,

그 당시 소외되었던 사람들을 담담하게 그려낼 수도 있으며,

사회의 모습, 그 자체를 그릴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급격한 변화, 그 자체를 그려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회격동기는 그 시대를 그릴수도, 그 시대 후를 그릴수도 있기에

작가들에게 있어서 여전히 매력적인 공간으로 다가서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이번에 소개할 소설은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입니다.

이 작가의 소설을 여러 편 읽어본 것이 아니기에 작가 자체에 대해서 논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다만 이 소설이 일본에서 유행하고,

다시 한국에서 유행할 수 있었던 배경들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려고 합니다.


이 소설의 공간은 사회의 격동기, 그 중심에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 격동기가 막을 내린 것처럼 보이는, 오늘 날을 배경으로 하여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사회 격동기의 한복판에 서있었던 주인공의 부모,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다음 세대의 한 소년에 대한 이야기이니까 말입니다.

바로 한국사회의 386으로 대표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 자식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소설은

구세대와 현세대의 갈등 - 운동권 아버지와 그것을 지켜보는 아들-,

사회 부조리와 정의 - 국민연금, 교육, 미디어, 개발, 환경, 인권-,

대립되는 두 가치 - 조직과 개인, 빈곤과 풍요, 도시와 농촌-

를 적절히 섞어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 냅니다.

'유쾌함과 냉혹함' 역시 적절히 섞어가면서 말입니다.

그러기에 이 소설은 일본소설이지만,

일본을 벗어나서도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국민연금을 거부하며, 국가의 존재의미조차 부정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기 때문에 주위와 마찰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그의 아들은 그러한 아버지의 모습에 신물이 납니다.

초등학교 6학년의 시선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회와의 갈등과 봉합으로 살아가던 가족들은

어느 한 사건을 계기로 도심의 한복판(동경)에서 사회의 오지로 이사를 가게 됩니다.

도시에서 자연으로 이동을 한 것이지요.

그들은 그 곳에서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가족관계,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갑니다.

그러나 그러한 오지라도 갈등이 존재합니다.

바로 그러한 오지까지 개발하려는 사람들과 그것을 극구 거부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가족들은 다시금 사건의 한복판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서로를 이해하기도 하며,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며,

그러나 언젠가는 좋은 관계로 만날 수 있다는 신뢰만을 가진채 서로가 서로의 방법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오쿠다 히데오는 이 소설을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위에서 말했던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은근슬쩍 소설 안으로 끌어들인 것 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순, 갈등은 어느 곳이나 존재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듯 합니다.

동경이라는 문명의 한복판에서 살고 있던 가족이 택한

가장 비문명적인 오지에서도 개발과 보존이라는 갈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갈등, 이해관계, 모순등이 국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부분에 걸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쿠다 히데오, 그는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골수 운동권이었던 소설 속 주인공의 아버지를 비난하지도 옹호하지도 않습니다.

대신에 그는 그러한 아버지를 보면서 자라나는 주인공의 시선을 통하여

현재의 시점에서 비판을 하기도 하며, 옹호를 하기도 합니다.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되는 모습들은 비판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것을 옹호합니다.

그러면서 어떠한 답을 내려주지 않은채 이런 말을 던집니다.


"하지만 너는 아버지를 따라할 거 없어. 그냥 네 생각대로 살아가면 돼."


이 말은 이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핵심 주제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도

기존의 여러 굴레에 얽매어 있지 않은 열려있는 개인을 긍정합니다.

답을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희망만을 남겨둔 채 소설은 끝이 납니다.

어떻게 보면 이 부분으로 인해서 소설은 어떠한 이념적, 정치적 비판에도 자유로울 수 있기에

작가가 얄미워 보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러한 열린 부분으로 인해 이 소설이 많은 인기를 끌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희망이라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을 보면서

소토리 구성이나 내용이나 그러한 부분들은 많이 다르지만,

박민규의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 소설 역시 사회의 모순을 그려내면서

그 결말은 희망을 놓치지 않은 채 열려있는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쿠다 히데오나 박민규나 현재 자신의 나라에서 인기가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희망을 찾기 위해

이들 소설을 즐겨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잃어버린 희망을 찾는 전주곡이 될지, 헛된 환상에 불과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희망이 없다고 느껴지는 시대에 희망을 더 많이 찾는 것은 사실이겠지요.


어찌되었든

이 소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두 안고 있습니다.

사회격동기, 그것을 한 시대 뒤에 경험하고 있는 주인공, 그리고 그들의 앞으로의 생활.

그리고 읽는 사람에 따라 어떤 희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더 멋진 사회를 위한 희망이 존재하기에

이 소설은 빛을 발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2007/08/20 22:12 2007/08/20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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