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가산점제 논란에 나타난 남성지배 문화 - 권김현영
[발제문]
《페니스 파시즘》
「‘죽이고 싶은 여자’가 되는 법 - 군가산점제 논란에 나타난 남성지배 문화 - 권김현영」
군가산점, 무엇이 문제였나?
군가산점 제도는 제대군인지원법에 의거, 1961년부터 시행되어왔다. 1997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병역비리로 인해 병역 기피가 확대될 것을 우려한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1998년 5월 제대군인 지원을 위한 강력한 보상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강화된 내용의 주요 골자는 7급 이하의 국가공무원 시험에 한정되어 있던 군가산점을 5급 국가고시에 확대해서 실시하고, 20인 이상 민간기업체에서 호봉과 승진에서 군대 경력을 근무기간에 포함하도록 하는 “군필자 우대정책”을 실시하지 않을 경우 3백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처벌조항을 신설하는 것이었다.
IMF로 인해 실업률이 치솟고, 정리해고 한파에서 가장 심각하게 시달리고 있던 여성 노동자들에게 이 개정안이 주게 될 타격은 너무나 자명한 것이었다. 채용시장에서 경쟁률은 더욱 높아져만 갔고, 급기야 만점을 받고 1% 내외의 가산점이 부과되는 자격증까지 딴 여성이 불합격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1999년 12월 23일, 군가산점은 위헌 판결을 받는다.
여성 혐오의 양상들
한국에서 “죽이고 싶은 여자”가 되는 법은 간단하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군대와 관련된 비판을 하면 된다. 그러면 즉각 “여자가 어디서!”라는 말과 함께 수많은 감정적인 분노를 목도하게 된다.
남성들의 분노는 논리나 이성이라기 보다는 감정적이며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는데도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 이들이 여성에게 모든 분노를 집중하는 근거는 아주 간단하다. 여성은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등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이 남성들이 군가산점 위헌판결 이후 징집에 따른 보상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여성징병을 요구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그 동안 보상이 ‘배제’를 통해 이루어져왔다는 점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보호받기 싫다면, 강간당해도 싸다
여성징병제와 관련해서 남성들의 의견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여자도 군대를 가봐야 남자의 고생을 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힘든 일을 여자에게 시키고 싶지 않았던 남성의 보호에 대해 고마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성이 국방의 의무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은 ‘보호받는 여성’과 ‘보호자 남성’이라는 구도를 만들어 내고, 이 구도는 ‘보호받아야 할 여성’과 ‘보호받을 필요 없는 여성’으로 여성을 이분화시키면서 정교해진다.
여성의 권리와 병역의무
국가에 대한 의무는 공적 영역에서의 의무(전통적 남성영역)를 가리켰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여성들이 국가에 대한 의무를 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여성의 기여는 남성개인에 대한 봉사로 축소되거나 은폐되어왔던 것이다.
나(권김현영)는 여성징병제를 요구하는 남성들의 험악한 목소리를 들으면서야 비로소 근대국가에서 평등한 성원권(成員權)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병역을 필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는 믿음을 남성들이 아주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토록 당당하게 커다란 목소리로 여성들을 욕하고 무시하고 협박하는 이면에는 여성과 남성은 결코 동등해질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였다.
근대적 평등개념과 병역의무
각국의 징집제는 근대국가 형성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유럽) 봉건적 민병대 -> 상비군 제도 ->징병제, 유산자 -> 무산자(평등권의 획득)
국가는 징집의무가 “신성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국민국가의 정당한 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병역을 필해야 함을 강조한다.
정상성=남성성=군인성의 고리
징집 대상자의 선별 과정은 해당 사회가 평균적 인간(정상인)을 누구로 상정하고 있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던져준다.
한편 군대에서는 남성성의 우월함을 통해 훈육이 이루어진다.
평등은 징집 대상자들 사이에서
군복무자들 개인은 분명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으나, 이러한 희생에 대한 불만을 은폐하기 위해 군복무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보상’이 이루어져왔던 것이다. 징집에서 제외된 사람들은 평등에 대해 아예 말할 자격을 빼앗기고, 징집 대상자들 사이에서의 평등만이 문제된다.
병역의무가 성원권과 결부되면서 징집 대상자의 선별 과정에서 드러나는 ‘정상성’ 모델은 단순히 군복무 적격자를 판정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해당 사회 구성원 전체의 정상성을 규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국가에게는 침묵을, 여성에게는 욕설을
병역비리 등 남성들 사이의 경쟁의식은 군사화와 징병제에 대한 비판의 칼을 무디게 만든다. 입 가지고 못할 말이 없다는 식으로 떠들어대지만 유난히 침묵을 지키는 대상이 있다. 바로 국가에 대해서다.
‘죽이고 싶은 여자’가 되기
나(권김현영)는 “폭력기술”과 “복종의 위계질서”를 훈육해온 군대에서 형성하고 있는 “남성성”이 철저하게 남성우월주의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과 성인남성들이 모두 이 공통된 경험에 의거해 동맹을 맺어 나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폭력이 언젠가 몇백 배의 폭력의 씨앗이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곤 한다. 여성들의 입을 “닥치게”하기 위한 폭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반복되고 있고, 강화되고 있다. 그쪽으로만 진화하도록 특수 고안된 재질인 듯하다.



Leave a comment !
군 가산점제는 당연히 있어야지..
전쟁이 나봐야 여자들이 군의 중요성을 알지
지난 민주화 운동했다고 보상 받는것들은 전부 반납하면
군 가산점제도도 없어지는것이 타당하겠지만,
폭도들 조차도 좌익 정권 10년 동안 민주화 투사로 둔갑한 판에
목숨을 담보로 군 복무한 자들에게 군가산점제가 무슨 특혜라도 되는 줄
착각하는 여자들은 정신 좀 차려라.
2009년.
이제는 이런 답글은 사실 별로 와닿지도 않네요.
미래를 부여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먼 과거에서 길을 헤매고 있는.
설득이나 논리가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시대의 숙명일지도..
결국 우리는 누구를 탓해야 하는 것인가.
의무에 대해 '배제'를 통한 우월감을 느끼길 바라는 남성.
'배제'에 의해 소외 받는 여성.
'배제'가 아닌 보상을 하기에는 벅차다는 국가.
다분히 물질주의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군가산점 폐지로 피해를 가장 많이 받는 것은 남성임에 틀림없다.
군대라는 소모적 공간, 하지만 없어서는 안될 공간에서
2년에 가까운 시간들을 젊은 시절 날려보내고,
그만큼의 기회들을 버린 이들.
여성들의 주장에 의해 그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이 사라졌다는
박탈감은 어찌보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그 초점이 '여성'에게 가서는 안 될 것이다.
남성이 기회를 2년간 잃었다는 이유로
그 기회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여성들의 기회를 빼앗는다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은가.
나 역시 군대를 다녀온 남자로서 많은 기회들을 놓쳤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기회들을 보상 받길 원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하지만 그 보상을 여성을 '배제'하면서 받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그저 내 기회들을 놓쳐야 했던 상황들을 안타까워할 뿐.
어서 빨리 그 기회들에 대한 보상이 다른 형태로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
다만 경력 인정의 경우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의무를 위해 2년이라는 시간을 소비했다면
그 2년만큼의 시간은 깎거나 더하는 것 없이 국가나 사회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군가산점 폐지는 '기회'의 평등의 관점에서 봤을 때 정당하다.
허나 군대 2년을 경력으로 인정해 주는 것마저 축소되는 것은 오히려 소모되는 기회와 시간들에 대해 '역차별'을 낳는 것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왔을 때
그 보상으로 인해 '배제'의 감정을 느끼는 이들이 없는 상황이 왔으면 좋겠다.
대개 보상이라는 것은 결국
어느 상황에서나 누군가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다가갈 수 있을테니까.
특히 '군대'라는 남성 중심적 사회에 대한 보상이라는 것은
결국 남성과 여성을 분리시킨 '보상'이라는 형태를 생성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