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정말 객관적, 합리적인 것인가
과학은 수세기동안 그 지위를 한없이 누려왔습니다.
과학적이라는 것은 종교보다도, 어떠한 이데올로기보다도 강한 힘으로서 작용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에도 과학은 과학만의 영역을 구축한 채 여전히 그 위세가 대단해 보입니다.
과학은 여러가지 가치들을 그 안에 내재하고 있습니다.
합리성, 객관성과 같은 가치들은
과학을 그 어떤 학문보다도 우월한 위치에 자리를 잡게 하였습니다.
합리적이다, 객관적이다라는 말은 인식주체가 끼어들 틈새를 주지 않기에
비판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흔히들 과학으로 '입증'되었다, '과학적'이다 라는 말은
이 사회에서 흔들리지 않는 법칙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말과 동일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과연 과학은 객관적이자 합리적일까요?
과학은 인식주체들의 주관이 끼어들 수 없이 고유한 진리로서 존재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비판들이 존재했습니다.
굳이 과학철학을 들먹이지 않아도 가깝게는 페미니스트들이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죠.
그들의 예민한 시각으로 말입니다.
그에 대한 입장들은 거칠게 나누어서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한가지 의견은 진리가 구성되는 맥락에 대한 비판,
한가지 의견은 인식주체의 주관성에 대한 비판,
또 한가지 의견은 과연 보편적 진리라는 것이 존재하는 가에 대한 비판입니다.
먼저 진리가 구성되는 맥락에 대한 비판을 살펴보면
진리라는 것은 어느 한 인식주체의 관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한 과학자가 한가지를 관찰해서 결과를 낸 것이 진리가 아니라,
진리라는 것은 여러가지 맥락에 의해서 구성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과학적 지식이란
주어진 물질에다가 하나의 방법을 적용하는 개별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관찰, 이론, 그리고 가설들을 수정하는 방식에 있어
서로서로 상호작용하는 연구자들에 의해 구축되는 것이다. - Longino"
따라서 연구 공동체 안에서는 이러한 과정에 대한 비판이 드러나기 힘든 경향이 존재하는 것이고
더욱 나은 진리를 위해서는 외부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린 넬슨(Lynn Nelson)의 이야기로는 위와는 약간 다른 맥락으로
지식을 생산하는 행위자들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들과 그 하위 공동체들이며,
이 공동체 안에서의 '믿음의 그물망'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둘 다 약간씩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은 다르지만
지식을 생산하는 것에 있어서 외부적인 비판이라든지, 내부적인 신뢰를 기반으로 해야
더 나은 지식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더 나아가 이야기하자면 현재의 과학계는 내부에서 신뢰를 구축하기에는
차별적인 요소 - 성, 계급등 - 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그러한 것을 내부적으로든, 외부적으로든 타파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과학은 더 나은 객관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죠.
두번째로는 인식주체의 주관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진리 혹은 지식이라고 하는 것을 바라보는 인식주체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주목합니다.
지식이나 진리를 바라보는 인식주체의 주관성이란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지금의 과학이라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합리적이라는 것이
서구 기독교 백인 남성들의 시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합리적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어 왔는지에 대해서 살펴봄으로서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폭로함으로서 그것들을 재구성할 새로운 관점을 획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합리적이라는 것에 붙여졌던 수식어는 대부분 남성들에 붙었던 수식어와 일치했으며,
과학 = 합리성 이라는 것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동시에 진리가 형성되는 시점인 주체(관찰자의 생각)와 객체(사물)의 일치는
실천으로서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위의 지식을 맥락적인 부분으로 비판하려는 자들과
인식주체의 주관성으로 비판하려는 자들과의 차이점은
전자는 주관적인 입장들이 어떻게 객관성을 형성해 나가는가에 주목했다면
어떻게 하면 지식을 탐구하는 더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했다면,
후자는 기존의 지식이 형성된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비판함과 동시에
비판적 관점으로 인식주체의 주관성, 지식을 재구성하는 것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과연 보편적 진리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입니다.
과학은 마치 그것이 보편적인 사회의 법칙인 양 행사를 하고 있는데,
과연 그것이 보편적이냐, 보편적인 것이 과연 존재하느냐에 대한 물음입니다.
쉽게 말해서
과학계를 움직이는 보편적인 법칙이 존재한다기 보다는,
과학계를 설명할 보편적인 설명이 존재한다기 보다는,
다양한 지식 생산들만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행위들은 어떠한 단일한 법칙으로 묶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렇기에 보편적이라는 말도, 보편적이기에 따라왔던 합리적이라는 말도, 객관적이라는 말도
모두다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위의 세가지 의견들은 서로가 상충하는 부분들이 존재하며
각각의 의견에 대한 비판들이 존재합니다.
다만 과학이 과연 객관적인 것인가라는 질문에
누군가는 더욱더 객관적으로 구성해 나가야 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지금의 객관적, 합리적이라는 것을 비판하며, 폭로하며, 새로이 재구성하려고 하며,
누군가는 객관적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상당히 계몽주의적인 기획이라고 흘려버리고 있습니다.
이 세 의견은 현재의 과학의 객관성, 합리성에 다각도로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제기가 유의미하다고 여기어진다면
지금의 과학이 정말로 객관적인지는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과학은 정말 객관적이며 합리적일까요?
과학적이라는 것은 종교보다도, 어떠한 이데올로기보다도 강한 힘으로서 작용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에도 과학은 과학만의 영역을 구축한 채 여전히 그 위세가 대단해 보입니다.
과학은 여러가지 가치들을 그 안에 내재하고 있습니다.
합리성, 객관성과 같은 가치들은
과학을 그 어떤 학문보다도 우월한 위치에 자리를 잡게 하였습니다.
합리적이다, 객관적이다라는 말은 인식주체가 끼어들 틈새를 주지 않기에
비판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흔히들 과학으로 '입증'되었다, '과학적'이다 라는 말은
이 사회에서 흔들리지 않는 법칙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말과 동일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과연 과학은 객관적이자 합리적일까요?
과학은 인식주체들의 주관이 끼어들 수 없이 고유한 진리로서 존재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비판들이 존재했습니다.
굳이 과학철학을 들먹이지 않아도 가깝게는 페미니스트들이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죠.
그들의 예민한 시각으로 말입니다.
그에 대한 입장들은 거칠게 나누어서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한가지 의견은 진리가 구성되는 맥락에 대한 비판,
한가지 의견은 인식주체의 주관성에 대한 비판,
또 한가지 의견은 과연 보편적 진리라는 것이 존재하는 가에 대한 비판입니다.
먼저 진리가 구성되는 맥락에 대한 비판을 살펴보면
진리라는 것은 어느 한 인식주체의 관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한 과학자가 한가지를 관찰해서 결과를 낸 것이 진리가 아니라,
진리라는 것은 여러가지 맥락에 의해서 구성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과학적 지식이란
주어진 물질에다가 하나의 방법을 적용하는 개별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관찰, 이론, 그리고 가설들을 수정하는 방식에 있어
서로서로 상호작용하는 연구자들에 의해 구축되는 것이다. - Longino"
따라서 연구 공동체 안에서는 이러한 과정에 대한 비판이 드러나기 힘든 경향이 존재하는 것이고
더욱 나은 진리를 위해서는 외부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린 넬슨(Lynn Nelson)의 이야기로는 위와는 약간 다른 맥락으로
지식을 생산하는 행위자들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들과 그 하위 공동체들이며,
이 공동체 안에서의 '믿음의 그물망'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둘 다 약간씩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은 다르지만
지식을 생산하는 것에 있어서 외부적인 비판이라든지, 내부적인 신뢰를 기반으로 해야
더 나은 지식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더 나아가 이야기하자면 현재의 과학계는 내부에서 신뢰를 구축하기에는
차별적인 요소 - 성, 계급등 - 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그러한 것을 내부적으로든, 외부적으로든 타파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과학은 더 나은 객관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죠.
두번째로는 인식주체의 주관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진리 혹은 지식이라고 하는 것을 바라보는 인식주체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주목합니다.
지식이나 진리를 바라보는 인식주체의 주관성이란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지금의 과학이라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합리적이라는 것이
서구 기독교 백인 남성들의 시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합리적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어 왔는지에 대해서 살펴봄으로서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폭로함으로서 그것들을 재구성할 새로운 관점을 획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합리적이라는 것에 붙여졌던 수식어는 대부분 남성들에 붙었던 수식어와 일치했으며,
과학 = 합리성 이라는 것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동시에 진리가 형성되는 시점인 주체(관찰자의 생각)와 객체(사물)의 일치는
실천으로서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위의 지식을 맥락적인 부분으로 비판하려는 자들과
인식주체의 주관성으로 비판하려는 자들과의 차이점은
전자는 주관적인 입장들이 어떻게 객관성을 형성해 나가는가에 주목했다면
어떻게 하면 지식을 탐구하는 더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했다면,
후자는 기존의 지식이 형성된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비판함과 동시에
비판적 관점으로 인식주체의 주관성, 지식을 재구성하는 것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과연 보편적 진리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입니다.
과학은 마치 그것이 보편적인 사회의 법칙인 양 행사를 하고 있는데,
과연 그것이 보편적이냐, 보편적인 것이 과연 존재하느냐에 대한 물음입니다.
쉽게 말해서
과학계를 움직이는 보편적인 법칙이 존재한다기 보다는,
과학계를 설명할 보편적인 설명이 존재한다기 보다는,
다양한 지식 생산들만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행위들은 어떠한 단일한 법칙으로 묶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렇기에 보편적이라는 말도, 보편적이기에 따라왔던 합리적이라는 말도, 객관적이라는 말도
모두다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위의 세가지 의견들은 서로가 상충하는 부분들이 존재하며
각각의 의견에 대한 비판들이 존재합니다.
다만 과학이 과연 객관적인 것인가라는 질문에
누군가는 더욱더 객관적으로 구성해 나가야 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지금의 객관적, 합리적이라는 것을 비판하며, 폭로하며, 새로이 재구성하려고 하며,
누군가는 객관적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상당히 계몽주의적인 기획이라고 흘려버리고 있습니다.
이 세 의견은 현재의 과학의 객관성, 합리성에 다각도로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제기가 유의미하다고 여기어진다면
지금의 과학이 정말로 객관적인지는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과학은 정말 객관적이며 합리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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