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장』사건과 군사문화적 집단폭력 - 진중권

[발제문]

《페니스 파시즘》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 『월장』사건과 군사문화적 집단폭력 - 진중권」


우리 사회의 집단무의식

얼마 전 부산대 여학생들이 만든 여성주의 웹진 『월장』에 게재된 글 하나가 커다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대학 내의 군사문화의 문제점을 전반적으로 짚어가는 전체 기획의 하나로 음담패설, 내리까시, 여자 후배에게 술 따르게 하기 등 대학 내 예비역 문화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킨 에세이식의 글이었는데, 글 서두에 “예비역을 100% 적으로 상정하고”라는 구절을 넣었다가 그만 대한민국 예비역들의 성스런 분노를 사고 말았던 것이다. 그후 『월장』의 게시판에는 분노한 예비역들의 국방색 목소리와 함께 눈뜨고 읽어줄 수 없을 정도로 낯뜨거운 성적 모독의 글이 올라왔고, 심지어 누군가 『월장』편집진 여학생들의 사적 정보를 성인 사이트에 올려놓기도 했다. 덕분에 그 말을 한 여학생들은 졸지에 폰섹스를 요구하는 남자들의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이 웃지 못할 해프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서 우리는 군부독재를 거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집단무의식이 된 몇 가지 병적 징후를 발견할 수가 있다.

첫째는 텍스트를 읽는 독특한 방법이다. 머리로서가 아니라 감정, 그것도 집단감정으로.

둘째는 집단적 정체성의 문제다. ‘예비역’이라는 것과 강력하게 동일시하는 것으로.

셋째는 반응의 집단성이다. 흥분을 하되, 그것도 집단적으로 떼를 지어 거국적으로 한다.

넷째, 대응의 폭력성이다. 거의 인민재판의 분위기이다.

다섯째는 그 집단의 무책임성이다. 그것은 극소수의 예비역들의 짓이며, 따라서 자기들은 그 테러에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군사문화와 폭력성

먼저 대한민국 예비역의 무의식에는 ‘군대가 여자들을 지켜준다’는 근거없는 자부심이 강하게 깔려있다. 물론 한국 여인을 정신대로 끌고간 것도 군대라는 사실, 그리고 그 잘난 한국 남자들이 자기 여인들이 정신대로 끌려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이 예비역 용사들의 단순한 머리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둘째, ‘여자들도 군대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군대도 안 간 주제에 우리를 비판하지 말라, 군대를 갔다오지 않은 자는 군을 논하지 말라는 얘기일 뿐이다. 달걀이 곯았는지 말하기 위해 굳이 암탉이 되어 알을 낳을 필요는 없을 터이나, 예비역들의 자부심은 이런 섬세한 이치를 따지기에는 너무나 무지막지하게 크다.

셋째, ‘신성한 군은 모욕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있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월성을 보장해주는 것이 바로 군대에서 한 경험이 아닌가. 그러나 그 성스런 체험은 “똥개훈련”보다는 좀더 신성한 이름을 가져야 한다.

넷째는 ‘군대에서 길러진 야수성의 즐거운 긍정’이 있다. 여성에게 성폭행을 가하며 그것을 쾌락으로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다섯째는 ‘군을 모독하는 자는 공동체에서 배제되어야 할 내부의 적’이라는 생각이 있다.

여섯째는 ‘페미니즘에 대한 격한 반감’이다.

일곱째는 ‘노골적인 성차별주의’다.


정체성의 실패

툭하면 벌어지는 이런 유의 부조리극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게다.

먼저 예비역들의 과도한 동일시 욕망. 우리 사회는 개성화 정도가 미약하여 개인들이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집단 속에서 하나가 되는 디오니소스적 망아(忘我)의 체험이 있다. 현대 사회는 인간들을 원자화한다. 하지만 인간은 동시에 사회적 동물이기에 자기의 개인성을 넘어서는 어떤 더 큰 보편성 속에 들어가기를 염원한다.

셋째, 집단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편안함이 있다. “집단은 양심이 없”기 때문이다.

넷째, 게다가 여기에는 대의의 신성함이 있다. 설사 군은 비판한다 하더라도 내가 마치고 돌아온 병역의무만큼은 여전히 신성함을 가진 영역이다.

다섯째, 게다가 상대는 여자가 아닌가. 만만한 타깃이다.


문명화를 거슬러서

내(진중권)가 이 사태를 접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왜 예비역들이 그 텍스트를 읽고 그렇게 격렬하게 흥분하고, 심지어 “고소” 운운할 정도로 심한 모욕을 받았다고 느끼는가’ 하는 것이다. 서구 중세에는 파토스를 절제하지 않고 마구 표출하는 것이 남성다움의 상징이었고, 사소한 일도 결투로 해결하려 드는 것이 전사의 미덕으로 찬양되었다고 한다. 중세의 전사들은 ‘문명화 과정’ 속에서 비로서 섬세한 예법과 세련된 취향을 가진 궁정인으로 변모했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군대생활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황군의 전통을 계승한 한국 군대의 야만성이 멀쩡한 시민들을 문명화 이전의 수준으로 되돌려놓은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 텍스트를 읽고 흥분할 이유가 없다.

이 사건을 보면 또 한가지 놀랄만한 것이 있는데 집단난동을 일으킨 예비역들이 정작 자기들이 여성에 가한 사이버 테러의 해악에 대해서는 별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 통탄할 일은 이런 테러가 벌어지는 순간에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어제의 용사들이 오랜 만에 만만한 상대를 만나, 전우애로 뭉쳐진 거대한 집단적 분노의 덩어리를 이루어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숭고한 대의명분을 믿고 맘껏 야수성을 드러내고 폭력적으로 공격본능을 분출시키는 그 자리에, 이성적 목소리를 내며 이를 만류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행하는 자는 극소수이고, 상찬하는 자는 소수이고, 묵인하는 자는 다수이다.

폭력은 더 이상 행해져서는 안 된다. 상찬되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묵인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는 것이다.

2007/02/04 18:00 2007/02/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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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신 2008/12/31 0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확실히 성적 불평등도 그렇지만 계급적인 사회풍토? 이런 병폐들이
    군대가 바뀌기전에는 바뀌기 힘들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군대에 있을수록 그런 생각이 들어서 가끔 오싹합니다.

    • 2009/01/02 14: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도 훈련소 있을 때 정말...

      군대가 바뀌면 세상도 바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니까.
      많은 남성들이 2년 동안
      계급, 마초성, 여러가지 것들을 몸에 배어서 나오니까 말야.

      물론 순기능도 아주 조금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폐단이 너무 크다..... 정말로.ㅋ